까치 무덤 by 꿀꽈배기

조금 전의 일입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고소한 커피가 땡겨서 10분 거리에 있는 할리스로 향했죠. 오랜만에 제일 큰 사이즈의 컵에 카페라떼를 한가득 담아(라즈베리 시럽도 듬뿍)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도로 한 켠에서 뭔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엔 누군가가 검은색 모자나 장갑, 머플러 같은 걸 떨어트려 놓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까치더군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죽은 까치. 누가 차도 밖으로 옮겨놓은 것인지 인도 턱 바로 아래에 얌전히 누워있던지라 자동차가 사체를 다시 치고 지나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요. 겉으로 보기엔 외상 흔적도 없고(목은 제대로 가누지 못해 뒤로 넘어간 상태였지만 죽은 동물들은 다 그러니까), 도로엔 핏자국도 없어서 대체 왜, 어쩌다 죽은 것인지 잘 상상이 가지 않더군요.

그래도 어쨌든 얼마 전까지 뜨끈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생명체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안 좋아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베란다 화단 옆에 있던 모종삽을 찾았습니다. 비닐봉투에 넣은 모종삽과 위생장갑, 까치를 넣을 종이 쇼핑백 까지를 가방에 넣고 곰곰이 생각했죠. 수의로 덮을 만한 천이 집에 뭐가 있을까. 처음엔 수건으로 감쌀까 하다가 옷장을뒤져보니 2~3년 전쯤에 유행했던 거즈면 소재의 풀스커트가 있더군요. 스커트 자체는 부피가 너무 커서, 안에 받쳐 입던 동일 소재의 속치마를 꺼내들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마침 색도 흰색이더군요.

길을 다시 되돌아가, 까치가 있던 장소에 도착하니 까치는 아직 거기에 있었어요. 위생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까치를 종이 쇼핑백에 넣은 다음 아파트 뒷길 화단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마땅한 랜턴은 없었던지라, 한 손으로 휴대폰 버튼을 열심히 눌러 액정 불빛을 깜박이며 다른 한 손으로 삽을 들고 땅을 팠죠. 발로 밟아 흙을 파낼 수 있는 큰 삽이 아니라 모종삽(;;)으로 까치가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파자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까치는 생각보다 꽤 큰 새였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한 15분쯤 낑낑대며 겨우 까치가 몸을 뉘일만한 구덩이를 파게 되었죠. 잠시 삽을 내려놓고 땅 위에 거즈면의 흰색 천을 펼쳐놓은 다음 쇼피액에서 까치를 꺼내 그 위에 올려놓고 돌돌 말아 감싸, 구덩이 속에 편한 자세로 잘 눕혀주었습니다. 구덩이만 확보되니 그 다음은 식은죽 먹기더군요. 파냈던 흙을 다시 덮어주고 발로 밟아 다져준 후 고양이들이 파내지 못하도록 작지 않은 돌들을 몇 개, 묫자리 위에 올려놓았죠.

일년 전쯤인가, TV를 보는데 마침 로드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었어요. 그 날 방송에서 로드킬의 주 대상은 네발 짐승이, 수리부엉이 같은 맹금류였죠. 평소 고라니나 오소리 같은 애들이 고속도로 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뉴스나 기사를 통해 많이 접했었지만, 높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차에 치여 로드킬 당한다는 게 처음엔 언뜻 이해가 안 갔는데 다큐를 보니 알겠더군요. 차에 치인 후 도로에 그대로 방치된 1차 로드킬의 사체들을 포착한 맹금류들이 그 사체를 낚아채려 낮게 내려날다가 혹은 사체를 먹기 위해 도로에 잠시 앉았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자동차들의 강한 헤드라이트에 순간적으로 시각이 마비되어 차이 치이는 것이 2차 로드킬의 과정이었죠.

로드킬 문제도 그렇고,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원래 동물들이 살던 삶의 터전을 인간들이 빼앗아 버리는 형국이 되다보니 (예전)정부 측에서도 새로운 고속도로를 확장할 때 이런 이슈들이 논의되었나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촬영했던, 청와대를 떠나기 전 마지막 다큐멘터리에 보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나왔죠. 차라리 도로 밑에 지하도를 파고, 동물들은 거기로 통행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겠냐는 어느 행정부처 관계자의 말에 노 전 대통령은 '말도 안 통하는 동물들을 지하로 다니라고 어떻게 교육을 시키나. 사람이 알아서 해야지. 그래서 고가도로를 더 짓고 싶었는데-' 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죠. '예산 때문에 많이 진행을 못했지만...' 이라는 덧붙임과 함께.

말이 곁가지로 많이 샜네요. 로드킬 얘길 꺼내긴 했지만 오늘 제가 묻어준 까치는 깨끗한 사체로 보건데, 일반적인 로드킬은 아닐 것 같고 그렇다고 음독(;;)이나 사람의 공격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아서 대체 죽음의 원인이 무얼까 잘 모르겠습니다. 뭐, 원인이 중요하겠어요. 부디 극락왕생해서 내세엔 무엇으로 태어나든,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네요. 편히 쉬어라.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honeytwist.egloos.com/tb/5104608 [도움말]

덧글

  • 시니사군 2009/10/25 02:46 # 삭제 답글

    제가 좀 후미진 동네에 사는지라 집에 빨리 오고 싶으면
    특히 밤새고 마시다 숙취가 심하면 인도가 아닌 도로를 걸어 오는데
    종종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보지요....
    아마 까치가 아무 상처가 없는 것은 날다가 차 유리에 치이지 않아서 일까 싶더군요.
    밟히지 않으면 크게 상처는 안 남는 것 같더군요...
    직접 치이는 것을 본 것은 아니지만 대개 사체들이 깨끗한걸로 봐서요.
    좀 그렇더라고요. 늘 하던대로 날아가는 건데 치이니까...좀 어떻게 못 하나 싶기도 하고.

    적어놓고 생각났는데 저도 로드킬 안 당하려면 그냥 인도로 다녀야겠습니다 -_-;;;;;;
  • 꿀꽈배기 2009/10/25 13:17 #

    말씀대로 유리에 치여서 내상을 입은 걸까요? 차라리 그랬다면 고통없이 한 번에 갔을테니 다행이다 싶고요. 그나저나 왜 차도로 걸어가시나요. 차도로 걸으면 숙취가 좀 해소되나요. (...)
  • candy 2009/10/25 11:35 # 삭제 답글

    아, 아름다운 마음.
  • 꿀꽈배기 2009/10/25 13:18 #

    아, 아름다운 댓글.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캔디님!! ;_;
  • 고양이 2009/10/26 11:44 # 답글

    좋은 일 하셨네요! 사실 길에서 그런 사고의 현장을 목격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덩치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수습은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마음만 쓰곤 한답니다. 그래서 꽈백님께 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군요! 짝짝짝짝짝--
  • 꿀꽈배기 2009/10/31 19:53 #

    저도 로드킬... 까진 아니어도 교통사고 난 후 깨갱 거리며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는 개를 그저 황망히 바라만 본 경우도 많고 그렇습니다. ㅠㅜ 예기치 못했던 죽음과의 맞닥뜨림은 언제나 가슴 먹먹한 일인 것 같아요.
  • 복숭아돼지 2009/10/26 19:53 # 삭제 답글

    좋은일 하셨네요 ㅠㅠ 그런데 동물사체를 땅에 묻어주는게 불법이라고 하더라구요.. 동물사체는 일반쓰레기로 분류되서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려야한데요... 가슴아픈 현실이네요 ㅠㅠ
  • 꿀꽈배기 2009/10/31 19:55 #

    까치를 땅에 묻은 과정 자체는 위법하나 이미 땅에 묻혔기 때문에 효력은 유효할 겁니다. 네. (...)
  • 쫄깃 2009/10/27 01:03 # 답글

    까치는 생각보다 꽤 큰 새였습니다.->노동의 강도가 느껴지네요.ㅠㅠ
    사골처럼 우려먹힌; 시지만 새삼 성북동 비둘기가 생각납니다. 전 이 시를 볼때마다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난 소외계층들까지 생각이 미치기전에, 비둘기(얘들은 그나마 구박받으면서라도 도시에서 사는 애들..ㅠㅠ)랑 산이 깎여서 쫓겨나거나 민가로 내려오다 로드킬당하는 동물들이 생각나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맥락없이 갯벌이나 남극빙하까지 이어진다능..;; 어쩔 때는 가만히 죽음은 죽음이다. 더 슬플 것도 더 귀할 것도 없다..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어떤 죽음은 가슴아리고 오랫동안 마음을 붙드는구나 싶어요. 그 중에서도 동물들의 죽음은 대부분 인간의 죄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런 듯.
    부디 죽는 순간은 고통이 없었기를 극락왕생하길 바랍니다.
    저도 땅 좀 파봤는데..(....) 삽질이 괜히 삽질이 아니더라구요.고생하셨다능~;ㅁ;
  • 꿀꽈배기 2009/10/31 19:57 #

    노동의 강도를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ㅜ 삽질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헉헉. 저도 이상하게 길에서 죽거나 다치는 동물들을 목격할 때마다 먼 나라의 아이들이 죽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짠한 마음이 들더군요. 개덕후이긴 하지만 딱히 동물애호가는 아닌데 왜일까 생각해왔는데 쫄깃님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도시 속 동물들의 죽음은 대부분 인간의 죄라서인지도 모르겠네요.
  • 얼그레이 2009/10/27 16:51 # 삭제 답글

    '어느날 그 길에서'라는 로드킬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고속도로에서 새종류의 로드킬도 많았습니다. 거기서 풀이 하기로는 큰 대형트럭(심지어는 10톤정도)의 차가 지나가면 공기의 흐름이 빨라져서 작은 새들같은 경우는 가차없이 빨려들어간다는 거지요. 그걸 보고 나니 길고양이와 길멍멍이들에게 '저 놈들도 언제 갈지 모르는데'싶어서 먹이하나 더 주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눈에 익은 길고양이가 제게 밥 얻어먹으려 오다가 로드킬 당하는 걸 눈 앞에서 목격하고 난후에 본 다큐라서 남일이 아니더라고요.
    다만, 대부분의 경우 걔들이 저를 무서워해서 눈 마주치면 도망을 간다는 맹점이...ㅡㅡ;;(노찌롱군처럼 "해치지 않아요"라고 할 수도 없고...)
  • 꿀꽈배기 2009/10/31 20:01 #

    아, 그 다큐! 저도 씨네21에서 소개글만 보고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얼그레이님께서 직접 보셨군요. 눈에 익은 길고양이가 눈 앞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니.... 정말 놀라고 가슴 아프셨겠어요. 얼그레이님께서 제 옆에 계시다면 꼭 한 번 안아드리고 싶네요. ㅠㅜ 저는 이 까치 일화가 있기 한달 전쯤에, 제 발 앞으로 개구리 한마리가 폴짝폴짝 뛰어가는 걸 발견했었죠. 아무 생각없이 개구리의 궤적을 눈으로 쫓고 있었는데 개구리가 제 앞을 지나 차도로 진입했을 때 SUV 승용차 한대가 그 위를 지나갔고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 순간, 그 생명이 터지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제 앞을 뛰어갈 때 얼른 손으로 잡아 풀숲에 놔줄걸 하는 후회가 계속 마음에 남아 까치를 묻어주게 된 걸지도 몰라요.

    그나저나 얼그레이님 포스 있으시군요. 전 개들이 너무 절 쫓아와서 문제인데;;; (아무래도 암컷 개 냄새가 몸에 배어서 그런듯? ;_;)
  • 밤의피크닉 2009/10/31 08:29 # 삭제 답글

    꿀꽈배기님 진짜 아름다운 마음씨...게다가 용기까지...저도 밤에 집에 오다가,아무리 봐도
    차에 치여서 죽은 것 같은 비둘기 봤는데 차마 가까이 가서 치워주지는 못하겠고,
    어떡해 어떡해 발 동동 구르고 그 다음 날 잊...어버린...(엉엉엉 퍽퍽) 그 사이에 어떤 분이
    묻어주셨는지...보이진 않더라고요.맘이 참 그랬다는...
    고생하셨습니다...^^
  • 꿀꽈배기 2009/10/31 20:03 #

    길 위에서 죽는 동물들이 너무 많죠.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버스나 택시를 탄 채로 지나가다가 로드킬당한 동물 사체를 발견할 때예요. 제가 직접 운전할 때도 그 부분이 가장 신경쓰이더라고요. 저 멀리 동물 사체같은 게 보이는데 차선 변경도 여의치 않을 땐 정말이지. ㅠ_ㅜ 밤의피크닉님께서 본 그 비둘기도 좋은 곳 갔기를 빕니다.
덧글 입력 영역



식미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