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후기 모둠 - 신상남, 대장금, 빨래 by 꿀꽈배기

신상남 뮤지컬 쇼

- 일찍이 이렇게나 투덜대놓고 왜 또 보러갔냐고 물으신다면... 숙제 검사 하러? (....)

- 어느새 이 쇼의 형식과 진행에 익숙해진 건지, 첫번째 볼 때보단 훨씬 좋았습니다. 재미있게 잘 놀다 왔어요. 프로포즈 타임과 관객 이벤트 없애고 뮤톡의 O/X 문답을 넣은 건 굿좝.

- 물론 저 만족도의 50% 이상은 이 날의 게스트였던 차지연씨로부터 기인하지만.

- 오랜만에 본 씨왓의 강도와 릴리도 좋았고, Endless Love도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여배우들에게도 이렇게 팬들과 가까운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차지연씨의 말.

- 첫번째 공연 때와 넘버 구성은 비슷했으나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정상윤씨의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 작년 뮤톡 콘서트에서 컨프론테이션을 김동호씨와 듀엣으로 불렀을 때도 느낀 거지만 콰지모도와 하이드는 뭐랄까, 정상윤씨에게 있어 궁극의 필살기 같은 느낌. 시전하면 효과는 있는데 HP 0 -_-;; 슬레이어즈에서 매 시즌 마지막 회에나 써먹을 법한 로드오브나이트메어인 거지. 하지만 이 배우 옆엔 가우리가 없잖아? 안 될 거야, 아마.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63베이커리의 파이와 타르트 류는 정말 맛있습니다.


고궁뮤지컬 대장금 시즌2

- 강태을씨의 뒷태, 특히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

- 전반적으로 의상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담스럽게 피트되지 않으면서도 몸 선을 따라 찰찰 흐르는 옷의 소재가 배우들의 몸매를 너무나 아름답게 장식하더군요. 색상 배합도 좋았구요. 장금이의 겨자색 치맛단 사이로 슬쩍슬쩍 내비치던 보라색 레깅스는 진짜-_-bb 한지상씨의 프릴 잔뜩 달린 즌하옷은 캐릭터에 너무나 적절해서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

- 퓨전사극이라고 얘긴 들었지만, 그래서 저런 현대적 의상들이나 이태원에서 마주칠 법한 헤어스타일의 조광조를 어색하다 여기진 않았지만, 단체로 쏘핫 V라인 춤을 추는 궁녀들의 군무는...... 쩜쩜쩜.

- 소격서혁파랑 내가 가겠소, 뜻을 높이 세우소서 등의 넘버가 참 좋았죠.

- 항간에선 이 뮤지컬에서 원작에 비해 장금의 비중이 너무 줄어들어 '뮤지컬 대장금'이라기 보단 '뮤지컬 조광조'라 하는 편이 낫겠다고들 하던데 제가 보기에 장금이 비중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장금이는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으로서의 역할과 중심축을 단단히 잡고 있었어요. 진짜 문제는 한상궁과 금영이의 비중이 앙상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데에 있었죠. (게다가 내용 압축 상 장덕은 나오지도 않았고) 드라마 대장금이 한국 드라마로서 이루어낸 가장 큰 성과는 실질적인 남자 주인공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여성캐릭터들로만 극을 풀어낸 여성드라마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극히 사적이인 질투와 앙갚음만을 주고받았던 기존의 드라마 속 여성캐릭터들과는 달리, 대장금에서는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도 최상궁과 금영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이었고, 이들에 맞서 기존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했던 진보적인 세력도 한상궁, 정상궁과 장금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혁명에 실패한 후 좌초된 장금에게 사회라는 조직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실력만큼이나 대인 관계도 중요하다는 걸 설파하며 한상궁의 빈자리를 채워준 캐릭터도 장덕이란 여성이었습니다. 그나마 남자주인공에 가까운 민정호조차 서장금이란 인물의 성장에 있어선 한상궁이나 장덕은 물론 정상궁만큼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 캐릭터였어요. 그런데 뮤지컬 대장금에서 사회 시스템 개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장금이 아닌 조광조였고, 성별과 나이,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연대하는 것도 한상궁-장금-장덕이 아닌 중종-조광조-민정호로 바뀌었죠. 장금인 그저 그를 뒤따른 것 뿐. (...) 세 남자가 도원결의하듯 부르는 '뜻을 높이 세우소서'는 멋졌지만, 본격 여성주의 사극이었던 대장금이 '남자들의 로망'에 가까워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더군요.

- 사실 이 뮤지컬은 그다지 관심 없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때문에 마음이 심난해서 극을 통해서라도 희망을 좀 찾아볼까 싶어 예매한 거였죠. 딱히 희망적인 엔딩도 아니었고,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을만한 근본'은 무너진지 오래인 세상이라 공연을 본 후에도 심난함은 가시지 않았지만-_-;; 경희궁의 정취와 더불어 즐겁게 본 작품이고, 다시 올라온다면 몇 번쯤은 더 보고 싶네요.


뮤지컬 빨래

- 약간 신파라는 얘기는 전해들었지만 공연 시작하기 전, 관람 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타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얘기까지 꺼내며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희망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얘기를 하길래 쫌 기대를 했죠.

- 공연 끝나고 진심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대체 이 작품의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요? 이거슨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그런 본격 현시창 드라마!

- 예전 포스트에서 작가에 대해 건방지고 거친 얘기를 했던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극의 화해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이 극에 등장하는 모든 권력자들과 가해자들은 어떠한 법적, 행정적 처벌도 받지 않고 심지어는 사적인 앙갚음 조차 당하지 않죠. 그에 비해 사회적 약자들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질 뿐입니다. 그, 서점 경영에 대해 빵한테 충고했다가 짤린 직원의 경우 노동청에 부당 해직으로 신고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뭐 하다못해 사장 뺨이라도 올려붙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사태의 해소법은 그냥 소주에 삼겹살이더군요. 아니 물론 스트레스 받을 땐 노래 가사처럼 소주에 삼겹살이 최고긴 하죠. 하지만 그게 끝? 이걸로 끝? ;; 이건 마치 쌍용차 노조원들한테 참이슬 한 병씩 돌리면서 '에휴,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가 뭐 힘이 있나. 결국 짤릴 거, 이거 먹고 속이나 풀어.'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물론 극이라는 게 꼭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해야할 의무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적, 인종적 차별에 대해 상당히 감정적으로 호소해놓은 상태에서(우리도 맞으면 아프고 어쩌구) 결국 가해자 누구 하나 현상황에 대해 책임지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로 피해자들끼리만 부둥부둥 위로하며 끝나버리는 게 참... 꼭 상태가 위중해서 숨이 헐떡헐떡 넘어가고 있는 사람한테 정밀 검사를 거쳐 적절한 약을 처방하는 대신 계속 참아보라며 진통제만 건네는 상황같았단 말이죠. 배우나 스탭들이 보면 굉장히 기분 나쁜 말일 테지만, 저렇게 엉망진창인 현실 속에서도 '너와 나 우리 둘이 사랑하며 살 수만 있다면 다 괜찮다'는 메시지의 엔딩을 보는 순간 현 정권 인사가 보면 굉장히 좋아할만한 작품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응, 그래. 어차피 현실은 이런 거야. 그러니까 없는 애들은 노조니 뭐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너희들 없는 애들끼리 소주 한 잔 걸치며 부둥부둥 끌어안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 갈등과 분쟁 없는 대한민국,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답니. ^-^

봉지쌀 하나를 살 돈이 없어서 쫄쫄 굶고 월세방 얻을 돈도 없어서 다니던 초등학교를 휴학한 채 지방 여인숙을 전전했던 시절의 저는, 아무리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여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굵어진 후엔 알게 되었죠. 그 때, 모자가정을 위한 제대로 된 복지정책만 있었더라도 우리 모녀가 그보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거라는 걸. 그래서, 시궁창인 현실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사랑과 화합만을 강조하는 이 극에 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가장 압권은 산업재해로 손까지 다친 낫심이 결국 본국으로 강제송환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 객석에서 터져나오던 개그콘서트st.의 '어우~'. 아.. 아니... 그렇게 가벼운 탄성으로 위로하기에, 우린 지금 너무나 묵직한 인생의 짊을 목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 소재 자체는 참 좋고, 캐릭터들도 매력 있는데 어떻게 이걸 좀 더... 블랙코미디풍으로나 아니면 아예 하드보일드하게 풀어낼 수는 없을까요. 흠.

- 나영이 처음 이사를 올 때 싸들고 온 책들과, 서점에서 말하던 작가의 꿈, 그리고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솔롱고의 과거- 이 모든 밑밥들이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단지 나영과 솔롱고가 서로에 대해 보다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소품 정도로만 사용된 점도 아쉬웠습니다. 사실 나영이란 캐릭터는 작가 스스로를 모델로 한, 작가의 분신이란 느낌도 강하게 들었는데요.

- 그래도 배우들은 모두 훌륭했어요. 제겐 홍광호 배우의 재발견이랄까.

- 예전에 뮤지컬해븐의 창작프로세스2에서 윌 애런슨이 말하길, 마이스케어리 걸의 넘버 작업 시 박용호 대표가 "팝한 멜로디의 발라드 곡"을 하나 주문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대체 한국에서 먹힐만한 팝한 멜로디의 발라드곡이 어떤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한국으로부터 테이나 팀 등의 대표곡들을 공수해 참고했다던데 빨래를 보고 나니 윌 애런슨이 '참 예뻐요'를 들었더라면 아, 이런 곡! 했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 무대 미술도 '참 예뻤죠'. 특히 밴드를 무대 사이드의 '캬바레'와 '교회' 건물 세트 안에 자리잡게 해서, 공연을 하는 밴드가 아니라 진짜 동네 캬바레 악단과 교회 찬양밴드인냥 작품 속에 녹여낸 점은 압권.

- 봤을 당시엔, 으으... 홍광호의 노래가 아니라면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싶었는데 시일이 쫌 지나니 소극장에서 다른 배우들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슬며시 고개를 드네요. 매주 수요일 낮공연은 대폭 할인이던데, 휴가 때 하루 날 잡아서 대학로나 전전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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