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포스팅했던 것과 같이 4월 19일 공연을 끝으로 당분간 메인페어가 아닌 크로스페어 공연이 진행되고 있지요. 이 페어의 크로스전 마지막 공연은 4월 19일 밤공연이었으나 제가 생각했을 때, 두 배우의 실질적인 '중간 정리'를 보여주었던 공연은 이, 4월 15일 공연이었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기억을 짜내어 리뷰를 써봅니다. 제가 평소 어떤 글이든 길게 쓰는 편이라서 이런 말 잘 안하는데 오늘은 해볼게요.
스압 있습니다.
- Why에선 상윤 네이슨이, 계약서에선 우형 리차드의 목상태가 꽤나 안 좋구나 하는 게 느껴지더군요. 정상윤씨는 목이 좀 갈라지는 것 같았고, 김우형씨는 평소보다 호흡이 짧고 힘겨웠던 듯. 스케줄 상 이제 슬슬 배우들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질 때가 되었다 싶긴 한데, 공연은 아직 절반 가량 진행되었을 뿐이니 끝까지 자알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상윤 네이슨은 전체적으로 심의씬에서 보여주는 표정들이 썩 풍부해졌어요. 웃기도 하고, 과거를 회상할 땐 울컥하며 찡그리기도 하고, 번뜩 하는 눈빛으로 노려보기도 하고, 깜놀하기도 하고…… 때문에 오늘의 네이슨을 가늠할 수 있는 thrill me까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오늘 공연에선 꽤나 감정이 살아있는 네이슨이구나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 Everybody Wants Richard. 전날(4/14) 공연에서 우형 리차드가 꽤나 달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길래 기대했더니만 이날 공연에선 쏘쏘? 뒤로 갈수록 천하의 개자식이었고요. 4월 5일부터였나, 8일부터였나. 상윤 네이슨이 리차드를 발견하고 끌어안기까지의 텀이 조금 길어짐과 동시에 우형 리차드의 모션-네이슨을 향해 '이리와, 안겨~' 하는 식으로 팔을 벌리는-이 추가 되었는데 이 날은 텀이 약간 짧았는지 저번에 보았던 팔 벌린 상태에서 '어서~' 라는 듯이 고개 오른쪽으로 까딱- 하는 추가 동작까진 안 가더군요. 요 고개 까딱 모션, 이 리차드의 폭풍 허세 캐릭터와 잘 어울리면서 되게 재미있는데요. 고정 애드립으로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그에 맞춰 정말로 모든 걸 리차드에게 내맡기듯 폭 안기는(강산 페어만큼 체격차가 안 남에도 불구, 상윤 네이슨의 무너지듯 안는 모션때문에 어쩐지 안기는 느낌이 나요) 상윤 네이슨의 연기도 볼때마다 참 좋고요. 본격적인 대사가 시작되기 전, 이 안고 안기는 연기 하나만으로도 두사람이 맺어온 관계가 명확하게 느껴지거든요.
어떤 분들은 상윤 네이슨이 리차드를 발견하고 얼굴에 화색을 띄며 그를 끌어안기까지의 약간의 텀- 2, 3초 정도 무표정하게 있는 걸, '돌아온 리차드를 발견하고 이제부터 얠 어떻게 내 옆에 묶어둘까 계획을 꾸미는 것'으로도 해석하시던데 전 그렇게까진 생각하고 있지 않고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3시에 약속을 하긴 했는데 얘가 정말 올까? 또 바람 맞는 거 아닐까? (바로 앞 심의씬 대사에서 "바람을 맞추고..." 라는 부분도 나오죠. 이게 리차드가 돌아오고 나서 둘이 만나기로 했던 최초의 약속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날 갖고 장난친 걸까? 혹시 내가 약속 시각을 잘못 말하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만난 후 재확인하는 "내가 3시라고 했지? 그렇지?" ) 3시가 훌쩍 넘은 시각까지 나타나지 않는 리차드를 생각하며 네이슨은 분명 이런 의심을 계속 하고 있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그가 눈 앞에 나타났어요.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그가, 1년 만에. 이런 상황에서 얼굴 보자마자 바로 달겨드는 것보다는 잠시 멍한 기분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진짜 '그'인가? 하는, 자신조차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비현실적 반가움.
올해는 리차드 뿐만이 아니라 네이슨 역시 희노애락의 감정선을 굉장히 분명하게 표현하는 캐릭터로 연출되고 있어서인지 이 넘버처럼 드라마성 강한 노래를 부를 때, 가사 내용에 따라서 네이슨의 목소리 톤 변화가 아주 강하죠. "말해, 어떤 여자야 술집 년이지. 그애하고 무슨 짓 했어?" 는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찬 목소리였다가 바로 다음 대목인 "정말 좋니, 그런 계집애가. 나보다……." 에선 금세 물기 가득한,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더 많은 일을 알고 있어. 네 잘난 친구가 떠벌렸지. 더많은 여잘 서로 돌렸다고, 대단해." 에선 허탈한 비웃음과 자조 섞인 목소리로 또다시 체인지- 그래서 올해는 노래를 듣고만 있어도 이걸 부르는 배우의 표정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탱고를 추는 여인마냥 눈 앞에 선명히 떠오릅니다. (...) 친절하고 디테일한 연출도 장단점이 있죠, 음.
- Nothing Like a Fire. 이 넘버야 뭐 언제나 부비부비 염장인데 그나마 이 날 공연은 좀 덜했어요. 리차드가 네이슨 얼굴도 안 쓰다듬어주고, 머리 키스도 안 하려다가 겨우 타이밍 맞춰서 한 듯한 느낌. (뭐 아예 안하는 날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마지막, 네이슨과 리차드가 붙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며 리차드가 연기속으로 천천히 퇴장하는 씬 말이죠. 전 작년에 볼 때도 이 씬의 연출에서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리차드와 현재로 돌아오는 네이슨- 이라는 구도는 떠올려본 적이 없어서 다른 관객들의 리뷰를 보고 음, 그런가? 하고 있었는데 이 날 공연에서야 어렴풋이 그 아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암전 속에서 네이슨을 향한 채로 천천히 한발짝씩 뒤로 물러나는 리차드의 모습이 연기와 어우러져 꼭 정말 1920년대의 빛 바랜 한 장면 같더라고요. 바로 이 장면과 Finale에서의 리차드 등장씬을 위해 봄 부터 멍청한 새는 그렇게 울었.... 나가 아니라, 리차드의 수트 색조는 세피아톤으로 맞춘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A Written Contract. 버전1의 상윤 네이슨은 거기서 나 자는 거나 지켜보라는 리차드의 말에 "고맙다."라고 씁쓸하게 말한 뒤 리차드를 등지고 앉자마자 표정이 확 돌변하죠. 그 전까지의 다소 장난스럽고 비굴하리만치 리차드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던 모습은 간데 없이 34년 후 심의관들 앞에 선 것 마냥 냉정한 얼굴이 됩니다. 마치 '이제, 시작해볼까.' 라는 듯 침착한 목소리 톤으로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라고 말하던(이 때까진 리차드를 등진 상태) 이 네이슨은 전주가 시작되면 곧, 리차드 앞에서 불안한 척, 두려운 척 하는 네이슨으로 돌아와 그를 향해 돌아보며 "나 걱정돼."라고 '연기'합니다. 이게 대충 3월 둘째주에서 셋째주까지의 상윤 네이슨이었고요. 3월 넷째주 들어서면서부터 버전2가 등장하기 시작했죠. 버전2의 상윤 네이슨은 리차드에게 자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디폴트나 버전1만큼 급변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특히 이날 공연의 경우, 불안한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불안해하며 리차드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어요. 물론 20년 전에 죽은 니체가 '말하고 있다'며 얼척없는 현재진행형 ing구문을 구사하는 바보 리차드가 의지하고 싶을만큼 믿음직스러울리는 만무하지만(...아 나 이 번역 정말 싫어 ㅠ_ㅜ) 이미 방화라는 범죄를 저지른, 비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가 나와 함께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과 목소리였죠. 버전2의 네이슨은 이 넘버에서 앞으로 자신이 진행할 계획의 반석을 닦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나와 함께 있어줄 것인지',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는데, 너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인지' 리차드의 마음을 떠보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 눈알을 또록또록 굴려가며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잽싸게 타자치곤 씨익 웃는 버전2 상윤 네이슨은 버전1의 무섭고 섬뜩한 느낌보다는 결혼 일주일 앞두고 마초 남편한테 억지로 가사 분담 서약서를 작성하게 만드는 여우st. 새색시(...)같은 느낌이 더 강하죠.
네이슨이 손가락 쓩 빼서 피하는 장면은 '디테일하게, 명랑하게, 쾌활하게'가 모토인 이 페어의 개그포인트 중 하나임이 분명한데(이 넘버에서의 상윤 네이슨, 정말 귀엽지 않나요? :D) 이날 공연에서는 리차드가 스스로 손가락 베는 장면에서도 웃더군요? ;; 으응? 체했을 때 손 한번 안 따보셨나들, 거기선 왜 웃지;; 리차드가 초인론 들먹이며 니체 책을 보여줄 때 필석 네이슨의 경우 안경을 꺼내, 안경을 쓴 채로 책을 들여다보고 상윤 네이슨은 안경 꺼내는 동작 없이 그냥 책을 휘리릭 넘겨보죠. 전 여기서부터 이 두 네이슨의 분기점이 갈라진다고 보고 있어요. 가까이 있는 책을 볼 때도 꼭 안경을 챙기는 필석 네이슨과 사실 안경같은 거 안 써도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상윤 네이슨. 게다가 상윤 네이슨은 계약서 쓸 때 "잠깐만, 나 안경 좀 쓰고." 라는 대사를 굉장히 힘주어서, 일부러 리차드 들으라는 듯이 연기하곤 하거든요. (또 그걸 들은 우형 리차드는 '으이구, 저 찌질한 놈' 하는 표정으로 킥킥 웃고) 마치 '자, 잘 봐두세요. 이 부분이 바로 복선입니다.' 라고 관객에게 넌지시 던져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네이슨이 아무리 천재여도 계약서 쓸 시점에서부터 안경을 어떤 key로 사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해석하긴 힘들겠지만, 굳이 안경을 쓸 필요는 없는 상황에서 리차드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혹은 그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안경을 쓴다는 느낌은 종종 받습니다.
- Thrill Me. 오오오, 나왔다!! 울면서 부르는 쓰릴미!!! 버전2 상윤 네이슨!!! 이 날의 우형 리차드는 앙탈보다는 정색에 가깝게 네이슨의 손길을 거부했고, 여전히 네이슨 말은 귓등으로도 안 처들었으며, 그래서 상윤 네이슨은 절망적이고 자조적인 감정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찢으려던 계약서를 다시 접어 안 주머니에 넣는 그의 얼굴 위로 희미한 웃음이 스친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 뿐이었고, 그조차도 승리와 쟁취의 미소가 아니라 패배자의 자기위안에 가까운, 초라한 웃음 조각이었죠. 눈물을 가까스로 삼키며 리차드에게 다가가 그를 돌려세우고 "집중해, 나한테!"라고 하는데 '애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쫌 5분만 집중해봐라 이 초딩색햐!!' 하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_-) 이 버전일 때의 네이슨은 "어린애 취급 말아, 복종할 테니까." 란 가사가 그렇게 애잔할 수가 없어요. 이 네이슨에게 있어 thrill me 넘버는 드디어 가졌다- 는 포만감이나 자족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는 결국 너를 끝까지 가질 수 없겠구나- 는 한계 자각의 장면이라서 말이죠.
'다 벗어줄테니 님 맘대로 하셈 ㄱㄱ' 모드로 첫단추부터 끝단추까지 죄~다 풀어헤치는 바람직한 산호 리차드와는 달리 어차피 암전됐을 동안 빛의 속도로 다 잠글거면서 단추를 채 다 푸르지도 않고 손 놔버리는 비싸…다기보다 게으른 남자 우형 리차드…… 쳇. 벗어도 안 봐, 안 봐. 흥. 이상하게 이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에선 공통적으로 어떤… 섹스 어필에 대한 결벽증마저 느껴진단 말이죠. 보는 사람 염장을 지르는 상대 배우와의 캐달달 러브러브 로맨틱 무드는 얄미울 만큼 잘 만드는데, 손끝이 저릿저릿… 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섹시 근처라도 가는 무드는 여엉……. 인색하기 짝이 없는 신체 노출이나 스킨쉽 수위도 그렇지만, 표현력이 모자라거나 감정 몰입을 못 하는 것도 아니면서 유독 타인을 '유혹하는' 넘버만큼은 소화 못 해내는 게 참으로 미스테리입니다. 지킬의 댄저러스 게임, 쓰릴미의 로드스터 같은 곡 말이죠. 이번 시즌 쓰릴미에서도 우형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포기했어요. 그냥 이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아윌킬유-_-가 컨셉인 거야. 응, 그런 거지. ||orz
- 5분 후, 나의 방. 넘버도 아닌 이 씬을 따로 빼는 건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장면이라. (먼 산) 전 이 씬 초입에서 무릎베개 하고 누워있는 네이슨의 디테일한 연기가 참 좋아요. 뭐랄까 그 행복함&만족스러움 가득한 표정과 몸 뒤척이면서 나른하게 내뱉는 한숨같은 게 아, 이건 정말 애프터(...)로구나 하는 느낌이 든달까요. 지엽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이 극 전체의 리얼리티를 완성시키는 법이지요. 물론 한손으론 다리 쓰다듬고 한손으론 리촤 손 끌어당겨서 가슴에 끌어안은 채 끊임없이 만지작 만지작 하는 것도 아, 얜 진짜 리차드 없이 어떻게 1년이나 버텼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좋… 긴 한데 사실 이 부분은 좀 많이 오글거려요? 내가 아무리 상윤 네이슨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대도 "무장…강도↗?" 하면서 주먹으로 리촤 팔 투닥투닥 두번 치는 건 진짜 크리티컬 히트. 만약 여자애가 저랬어봐요. 아무리 자기 남친이랑 둘만 있을 때 하는 행동이라해도 조낸 재수없다며 미립자가 되어 부서지도록 까일걸? ㅋㅋㅋㅋㅋㅋㅋ 아, 음,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_-;;
저 "무장강도?" 라는 네이슨의 말에 "살인." 이라고 답하는 우형 리차드의 톤이 4월쯤 들어서부터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마치 예전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 계획하고 있었던 것을 이번 기회를 빌어 입 밖으로 꺼내어놓기만 한다는 느낌으로, "살인." 이라며 차분히 말했는데 요즘은 지금 막 이 자리에서 번뜩!! 하고 생각난 듯이 "……살인!" 이라고 흥분된 톤으로 말해요. 근데 이 대사의 목소리 톤과 뭔가에 홀린듯한 표정의 조화가 썩 좋아서, 저 대사 듣자마자 '아아, 큰일났다. 쟤 또 발동 걸렸다. ㄷㄷ' 싶은 위험한 느낌이 확 들더라고요. 저건 말릴 수 없어, 일단 시동 걸리면 멈출 수 없는 성질의 것이야- 하는 느낌 있잖아요.
그런 리차드의 캐릭터에 맞춰서 연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이건 상윤/산호 페어를 보면 알 수 있겠죠.) "살인." 이라고 말하는 리차드에 대한 반응 역시, 상윤 네이슨은 다른 네이슨들과 사뭇 다릅니다. 작년의 우형 네이슨이나 올해 필석 네이슨의 경우, 리차드가 살인을 다음 계획으로 말해도 그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고 농담처럼 치부해버렸기 때문에 곧바로 정색하고 일어나지 않죠. "니체를 너무 많이 읽었다. 탐정소설을 많이 읽었거나." 이 대사도 여전히 리차드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느긋하게 말했고요. (우형 네이슨의 경우 어익후~ 애드립 추가 ←) 하지만 상윤 네이슨은 리차드가 살인- 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이것이 결코 농담이 아님을, 리차드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온 이상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말대로 행동할 것임을 정확히 파악합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초조한 눈빛으로 리차드를 달래고 설득하죠.
- The Plan. 우형 리차드는 여기서부터 울었습니다. 동생 죽이잘 때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어린애를 죽이자는 결론에 도달하자 눈물이 주룩. 저만의 징크스랄까요, 더플랜에서 울면 그 날 공연이 좋더라고요. 나 원래는 차갑고 건조한 연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으음.
"동생보단 낫잖아." 작년의 동호 리차드도 그렇고, 산호 리차드도 그렇고, 심지어 우형 리차드도 이전까지는 모두 이 가사를 다소 장난스럽게, 어린애를 죽이자는 계획을 만류하는 네이슨을 조롱하듯이 말했죠. 최대한 문자로 표현하면 "동생보단 낫잖아~" 정도 될까나. 이 뉘앙스에선 원래 리차드의 최종목적은 어린애를 죽이는 것이었고, 동생을 죽이자고 먼저 운을 띄운 건 진짜 목표를 결정하기에 앞서 장난스레 던져본 떡밥이란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날 우형 리차드는 진짜, 진심으로 동생을 죽이고 싶은데 '동생이라서' 차마 죽이진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어요. 벙쪄 있는 네이슨을 바라보며 천천히 퇴장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생보단 낫잖아?" 라며 물어요. 자신의 계획에 대한 네이슨의 동의를 구한다거나 네이슨의 선의를 조롱하는 게 아니라, '나도 아쉽지만, 그래도 동생보단 나은 거 아니야?' 라고 진심에서 우러나와 묻듯이 말하는 그 얼굴이 참…… 순진무구해서 섬뜩하달까. 이 장면에서 섬찟한 느낌을 받아보긴 또 처음이었죠. 이 리차드라면 언젠가는 분명히 동생을 죽일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은 예행연습일 뿐이고.
- Way Too Far. 상윤 네이슨의 엄마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마치 수학여행 가기 전 가방 꾸리는 중2 처럼 "닌텐도오~ 고스톱~ 팩소주~ 다 됐어 ㅋㅋ" 하는 리차드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엔 두려움과 참담함, 망설임과 슬픔만이 가득하더군요. thrill me에서부터 느껴진 감정선이 일관되게 쭉 이어져서 좋았어요. 사실 이 장면에서 네이슨에게 좀 집중을 못한 게, 우형 리차드가 이날 공연에서 유독 염산 뿌려보이는 모션을 신나게 해서 말이죠. 마치 주교님한테 알콜 뿌리듯이 염산병을 흔들어 보였다면 대충 상상이 가시려나요? ㅋㅋㅋㅋ
- Roadster. 이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첫공 때가 너무 인상깊게 남아서 그 후로는 별 감흥을 못 받고 있어요. 전 모든 매체를 통틀어 이렇게 노골적으로 무서운 유괴범은 처음 봤거든요. '그런 사람 아니야~' 라고 하는데 피식 웃던 앞자리 아저씨, 순간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래요, 솔직히 이해는 갔어요. (...) 그런 사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빠, 거울 좀 보세요. 눈이 시뻘겋게 번들거리고 있어요? 얼굴에 "아아, 빨리 죽이고 싶다. 얼른 요 녀석 뒷덜미를 낚아채서 머리를 박살내고 싶어." 라고 쓰여있는데요? 그래서 로드스터 보는 내내 대체 이렇게 대놓고 살기를 내뿜는 남자를 따라가는 애는 얼마나 눈치가 없는 거야?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또 09' 쓰릴미 공연 초반엔 애 발자국 조명이 살짝 맛이 갔었죠. 다 꼬셔서 차고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객석 쪽으로 발자국 '하나'가 덜렁 떨어지질 않나; 한 번에 몇 발자국을 순간 이동하질 않나. 그래서 아… 저렇게 맹한 애라면 따라갈 수도 있겠다… 라고 묘하게 납득했어요-_-;; 뭐, 요즘은 약간 살기가 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미혹자로서의 '능숙함'보다는 열아홉살 꼬꼬마의 '미숙함'을 강조하는 연기.
이 페어는 정말 로드스터가 설득력이 없는 게, 리차드는 그렇다쳐도 차 문 열고 올라타면 상윤 네이슨이 운전하고 있잖아요? (작년엔 이런 식의 공범행위가 배제된, 오로지 리차드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연출이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애가 뒷자석에 올라타면 네이슨이 물끄러미 쳐다볼 거 아니에요? 애 보고 씨익 웃는 라이토 모드 네이슨이든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떨면서 애 눈치 보는 너드 모드 네이슨이든 애 입장에선 정말 두려워… 모든 것이 다아……. (반대로 차에 올라탔는데 필석 네이슨이 예의 그 온화하고 정화되는 미소를 지어보이면 어떤 애라도 마음을 푹 놓을지도 ←)
- Superior. 여전히 정신 없는 슈페리어. 이날 이 넘버에선 전혀 예상못했던 부분 때문에 집중을 못했습니다. 리차드가 트렌치 코트를 벗어서 집어던지는데, 베스트와 바지 사이로 셔, 셔츠가 삐져나왔어!!! 배우는 몰랐겠지요. 네에, 몰랐을 거예요. 그 꼼꼼하게 옷 매무새 다듬는 결벽한 성격에 지금 자기 뒷태가 어떤지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삐져나온 셔츠를 구겨 넣었겠죠. 전 계속 마음 속으로 '어서 재킷 입어, 어서!!!' 를 외쳤을 뿐입니다. 흑흑. 그치만 이 페어의 슈페리어는 산만해서 공연 내적으로는 정말이지 집중이 안 되는 걸. 전 상윤 네이슨이 찌질하다는 평에 별로 공감 안 하는 편인데(찌질하다기엔 너무 귀엽지 않나요? :-P) 이 넘버에서 "맘껏 휘저어 세상을!" 하며 리차드가 네이슨을 무대 앞으로 떠밀 때, 잔뜩 움츠러든 채로 비틀거리는 상윤 네이슨만큼은 찌질하다는 단어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네요. 아, 이날 우형 리차드의 대사톤 중에서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완전 시건방지고 자신만만하게 친 "물~론!" 요거 마음에 들더군요.
- Ransom Note. 여기서 상윤 네이슨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는 리차드가 타자 치고 있을 때 그 편지의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고 계단 위로 올라가, 침대 근처에서 초조한 듯 손을 비비며(닦는 게 아니라)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는 연기를 펼쳤는데 이 날 공연에서는 필석 네이슨과 유사한 해석으로 갔어요. 타자 치는 리차드 곁에 잠시 머물렀다 올라가긴 했지만 내용을 봤다기 보단 그저 물끄러미 리차드를 바라보았을 뿐이고 침대 근처로 올라가서는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살인의 흔적을 신경쓰는 모습이 역력했어요. 필석 네이슨이 강박적으로 손바닥을 문질러 닦아내는 모션을 취했다면 상윤 네이슨도 손을 문지르긴 했지만 그보단 소매끝단 같은 곳을 코 앞으로 가져가 (피)냄새를 맡는 모션이 인상적이더군요. 눈빛도 굉장히 불안했고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안경을 일부러 떨어트렸다'는 해석은 아직 유효했어요. 안경을 정말 당황해서 찾아보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리차드와 함께 편지 내용을 읽을 때 "아직은 안전하다. 하지만 장담 못해." 라는 가사에서 편지가 아닌, 리차드의 얼굴을 바라보며 편지의 내용을 똑같이 '리차드에게 알려주는' 연기가 여전했거든요. 이 페어의 협박 편지는 실제론 둘인거죠. 리차드가 아이 부모에게 보내는 내용이 하나, 그리고 네이슨이 리차드에게 보내는 내용이 하나.
결국 안경을 일부러 떨어트려놓고,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그에게 하나씩 단서를 흘리고 힌트를 주며 리차드의 반응을 관찰하는 상윤 네이슨의 캐릭터 자체는 변함이 없어요. 단, 디폴트나 버전1일 경우 '안경으로 얘를 덫에 빠트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라는 철저히 계획적인 계산이 돋보인다면 이 버전2에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정상윤씨가 말했던 것처럼 안경을 떨어트린 게 이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순수한 '터닝포인트'로서 기능하기를 바라고 취한 행동이었다는 점이 다르죠.
우형 리차드는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요. 나 이것 좀 불만. 진짜 아버지고 동생이고 뭐고 아무 생각 없이 협박편지 싱나싱나~ 했던 초반의 초딩 리차드 해석 완전 신선했는데. ㅠ_ㅜ 그래도 "야, 내가 유괴 당하면 우리 아버진 어떻게 할까?" 이 대사를 할 때까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애정결핍 컴플렉스 같은 감정 없이, '잠깐,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애를 찾기 위해 부모가 돈을 내겠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할텐데……. 과연 부모가 애를 찾기 위해 그만큼의 돈을 낼까? 우리 아버지라면 어떻게 할까? 날 위해서 돈을 낼까?' 이런 사고 과정을 통해 도출된 순수한 '의문문'이라서 마음에 듭니다. 보통 다른 리차드들은 이 대사에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를 드러냈죠. 그러다가 네이슨과 그의 아빠의 관계가 언급되고 난 후, 자연스레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와 비교하게 되고 네이슨에 비해 너무도 명백하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약간의 자조적인 뉘앙스로 손가락을 책상이나 타자기 모서리에 튕기면서(이건 약간 우울해질 때 보이는 버릇? 초조할 때 보이는 라이터 딸깍거리기나 입술 만지기랑은 확연히 다른 버릇인데) "우리 아버지는 단지 사회적인 시선에만 신경쓸 걸." 이라고 말하다가 또 완성된 편지 바라보며 네이슨과 함께 에헤헤헷 웃죠. 이 웃는 것도 예전엔 아버지 얘기를 하고는 있지만 편지에만 신경 팔려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못 참는다- 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웃기 전 대사톤이 좀 차분한 느낌이라 자신도 모르게 웃는다기보단 의식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혹은 네이슨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웃음으로 상황을 피한다는 느낌.
- My Glasses/Just Lay Low. 쓰릴미, 슈페리어, 내안경- 이렇게 세 넘버가 이날 공연 유독 템포가 빠르단 느낌이 들었어요. 08시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09시즌 공연에 비하면 긴박감이 있다랄까. 특히 내안경/기다려 넘버에서의 피아노 연주는 정말 좋았습니다. 올해 들었던 내안경/기다려 반주 중 최고였어요. 날카롭게 날이 올라 배우들의 호흡이 조금만 어긋나도 베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죠. 이 넘버 초반 리차드의 대사 중 실실 웃으면서 "어떻게 알아보냐? 애 얼굴이 완전히 녹았는데 ㅋㅋ" 이거 참 좋지요. 진짜 죄책감이라곤 1그램도 없어. 아이 좋아. 마지막 수화기 내려놓는 타이밍도 딱 맞았죠. 이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지면 어떤 효과가 생기냐면ㅡ 저렇게 의심하고 배신하고 갈등하며 반목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런 사소한 동작마저도 '어쩔 수 없이' 일치하는 나와 그의 Relationship 이 느껴지거든요.
- I'm Trying To Think. 리차드의 "최고를 가진 놈이 어떻게 되는지 알겠다!" 이 대사톤 좋았어요. 사실 이건 한국어로 번역한 대사 자체가 내용 안에 썩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하는 느낌이라 배우들도 이 대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서 소화해야할지 결정하기가 좀 힘들 듯. 원작에서 BEST 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던 단어를 한국어 느낌으론 제대로 살리기가 어려우니 말이죠. 그래서인지 이 부분은 매 공연마다 대사톤을 다르게 시도해보더라고요. 전 이날 공연에서의 대사톤이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상윤 네이슨은 마지막 취조당할 때 아주, 아주 약간 톤을 바꾸었더군요. 미친 듯이 움츠러들면서 "생각 중이죠오오오오↗" 라고 비명을 지르듯 노래하던 걸 모션도 약간은 절제하고(그치만 여전히 두려움에 떠는, 혹은 떠는 척하면서) "생각 중이죠오…" 라며 비교적 일상톤으로 노래했어요.
- Way Too Far rep. 개자식 리차드 소환. 첫 등장할 때부터 공원히 멍 때리고 앉아있는 네이슨을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씨발- 하고 욕을 하더군요. 야 인마 너 쫌!!! ㅠ_ㅜ 바닥에 형편없이 엎어져 있는 네이슨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허리 숙여 들여다보며 "안경을 떨어트린 건 내가 아니야아?" 하는데 진짜 저라도 너어어어어어!!!! 하고 싶을 만큼 얄밉더라고요. 계속 일관되게 슬픔과 자조, 패배의 정서로 얼룩진 네이슨이었어서, "어쩌다 이렇게… 뭐가 잘못된 걸까……." 라고 읊조리는 네이슨의 감정이 절절하게 와 닿았죠. 이 네이슨이 말한 "멀리 달아나버리고" 싶지만 결국 "못 하는" 대상은, 경찰이나 범죄 사실이 아니라 리차드, 오로지 '그'ㅡ
- Keep Your Deal With Me. 이 날 공연에서 유일하게 납득이 가지 않은 장면. 공연 동선 상, 배우들의 표정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왼쪽~중앙의 좌석에 주로 앉는지라 이 넘버에서 리차드가 네이슨을 껴안고 애원하며 키스할 때, 늘 리차드보다는 네이슨의 표정이 더 잘 보이곤 했습니다. 이 날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조금 후회했어요. "뭐든 할게, 자기야. 너 없인 나도 없어." 라고 말하는 네이슨의 심경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네이슨의 표정 변화에 주목할 게 아니라 그런 네이슨의 눈에 비치고 있는 리차드의 모습을 오히려 더, 주목해서 봐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피로하고 권태로운 표정으로 그를 외면하던 네이슨이 본 자신에게 매달려오던 리차드, 키스하기 직전에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 그것을 봐야 무엇이 이 네이슨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더라고요. 뒤이어지는 Life Plus 99 Years에서 보여준 연기로 인해 킵유어도 극 안에서 감정선이 어긋나는 이질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날의 킵유어는 아직까진 미완성에 가까운 상태로 느껴졌습니다.
왜 상윤 네이슨이 유독, 이 넘버를 흥미로워 하면서도 새로운 버전으로 선보이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고 하면 건방진 관객 1인으로 등극하게 되는 걸까요? 정상윤씨는 네이슨의 대사 자체엔 일절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그 대사를 연기하는 목소리 톤과 표정, 동작에 미묘한 변화를 주며 3월말부터 꾸준히 캐릭터를 업데이트 해왔죠. 맨처음엔 라이프+99를 건드렸고(내가 널 협박하니?/아니, 늘 함께 할거야), 그 다음 Thrill me를 건드렸으며(계약서 찢는 씬/집중해, 나한테), 생각중이죠(마지막 진술씬)를 거쳐 이제 마지막, 이 킵유어딜에 이르렀습니다. 크로스 직전의 공연이었던 19일 밤공의 킵유어딜을 돌이켜보면, 그건 버전2의 상윤 네이슨이 연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연기할 경우 일관성 있고 안정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는 있되, 공연 초반부에 보여졌던 그야말로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 네이슨은 일정 부분 포기해야만 하죠. 때문에 앞으로 킵유어를 어떤 식으로 새롭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상윤 네이슨이 지금까지 보여준 두 방향의 네이슨을 '동시에' 표현해낼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몇주만 더 기다려보자. 업뎃될 때까지~
스압 있습니다.
- Why에선 상윤 네이슨이, 계약서에선 우형 리차드의 목상태가 꽤나 안 좋구나 하는 게 느껴지더군요. 정상윤씨는 목이 좀 갈라지는 것 같았고, 김우형씨는 평소보다 호흡이 짧고 힘겨웠던 듯. 스케줄 상 이제 슬슬 배우들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질 때가 되었다 싶긴 한데, 공연은 아직 절반 가량 진행되었을 뿐이니 끝까지 자알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상윤 네이슨은 전체적으로 심의씬에서 보여주는 표정들이 썩 풍부해졌어요. 웃기도 하고, 과거를 회상할 땐 울컥하며 찡그리기도 하고, 번뜩 하는 눈빛으로 노려보기도 하고, 깜놀하기도 하고…… 때문에 오늘의 네이슨을 가늠할 수 있는 thrill me까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오늘 공연에선 꽤나 감정이 살아있는 네이슨이구나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 Everybody Wants Richard. 전날(4/14) 공연에서 우형 리차드가 꽤나 달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길래 기대했더니만 이날 공연에선 쏘쏘? 뒤로 갈수록 천하의 개자식이었고요. 4월 5일부터였나, 8일부터였나. 상윤 네이슨이 리차드를 발견하고 끌어안기까지의 텀이 조금 길어짐과 동시에 우형 리차드의 모션-네이슨을 향해 '이리와, 안겨~' 하는 식으로 팔을 벌리는-이 추가 되었는데 이 날은 텀이 약간 짧았는지 저번에 보았던 팔 벌린 상태에서 '어서~' 라는 듯이 고개 오른쪽으로 까딱- 하는 추가 동작까진 안 가더군요. 요 고개 까딱 모션, 이 리차드의 폭풍 허세 캐릭터와 잘 어울리면서 되게 재미있는데요. 고정 애드립으로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그에 맞춰 정말로 모든 걸 리차드에게 내맡기듯 폭 안기는(강산 페어만큼 체격차가 안 남에도 불구, 상윤 네이슨의 무너지듯 안는 모션때문에 어쩐지 안기는 느낌이 나요) 상윤 네이슨의 연기도 볼때마다 참 좋고요. 본격적인 대사가 시작되기 전, 이 안고 안기는 연기 하나만으로도 두사람이 맺어온 관계가 명확하게 느껴지거든요.
어떤 분들은 상윤 네이슨이 리차드를 발견하고 얼굴에 화색을 띄며 그를 끌어안기까지의 약간의 텀- 2, 3초 정도 무표정하게 있는 걸, '돌아온 리차드를 발견하고 이제부터 얠 어떻게 내 옆에 묶어둘까 계획을 꾸미는 것'으로도 해석하시던데 전 그렇게까진 생각하고 있지 않고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3시에 약속을 하긴 했는데 얘가 정말 올까? 또 바람 맞는 거 아닐까? (바로 앞 심의씬 대사에서 "바람을 맞추고..." 라는 부분도 나오죠. 이게 리차드가 돌아오고 나서 둘이 만나기로 했던 최초의 약속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날 갖고 장난친 걸까? 혹시 내가 약속 시각을 잘못 말하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만난 후 재확인하는 "내가 3시라고 했지? 그렇지?" ) 3시가 훌쩍 넘은 시각까지 나타나지 않는 리차드를 생각하며 네이슨은 분명 이런 의심을 계속 하고 있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그가 눈 앞에 나타났어요.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그가, 1년 만에. 이런 상황에서 얼굴 보자마자 바로 달겨드는 것보다는 잠시 멍한 기분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진짜 '그'인가? 하는, 자신조차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비현실적 반가움.
올해는 리차드 뿐만이 아니라 네이슨 역시 희노애락의 감정선을 굉장히 분명하게 표현하는 캐릭터로 연출되고 있어서인지 이 넘버처럼 드라마성 강한 노래를 부를 때, 가사 내용에 따라서 네이슨의 목소리 톤 변화가 아주 강하죠. "말해, 어떤 여자야 술집 년이지. 그애하고 무슨 짓 했어?" 는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찬 목소리였다가 바로 다음 대목인 "정말 좋니, 그런 계집애가. 나보다……." 에선 금세 물기 가득한,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더 많은 일을 알고 있어. 네 잘난 친구가 떠벌렸지. 더많은 여잘 서로 돌렸다고, 대단해." 에선 허탈한 비웃음과 자조 섞인 목소리로 또다시 체인지- 그래서 올해는 노래를 듣고만 있어도 이걸 부르는 배우의 표정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탱고를 추는 여인마냥 눈 앞에 선명히 떠오릅니다. (...) 친절하고 디테일한 연출도 장단점이 있죠, 음.
- Nothing Like a Fire. 이 넘버야 뭐 언제나 부비부비 염장인데 그나마 이 날 공연은 좀 덜했어요. 리차드가 네이슨 얼굴도 안 쓰다듬어주고, 머리 키스도 안 하려다가 겨우 타이밍 맞춰서 한 듯한 느낌. (뭐 아예 안하는 날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마지막, 네이슨과 리차드가 붙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며 리차드가 연기속으로 천천히 퇴장하는 씬 말이죠. 전 작년에 볼 때도 이 씬의 연출에서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리차드와 현재로 돌아오는 네이슨- 이라는 구도는 떠올려본 적이 없어서 다른 관객들의 리뷰를 보고 음, 그런가? 하고 있었는데 이 날 공연에서야 어렴풋이 그 아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암전 속에서 네이슨을 향한 채로 천천히 한발짝씩 뒤로 물러나는 리차드의 모습이 연기와 어우러져 꼭 정말 1920년대의 빛 바랜 한 장면 같더라고요. 바로 이 장면과 Finale에서의 리차드 등장씬을 위해 봄 부터 멍청한 새는 그렇게 울었.... 나가 아니라, 리차드의 수트 색조는 세피아톤으로 맞춘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A Written Contract. 버전1의 상윤 네이슨은 거기서 나 자는 거나 지켜보라는 리차드의 말에 "고맙다."라고 씁쓸하게 말한 뒤 리차드를 등지고 앉자마자 표정이 확 돌변하죠. 그 전까지의 다소 장난스럽고 비굴하리만치 리차드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던 모습은 간데 없이 34년 후 심의관들 앞에 선 것 마냥 냉정한 얼굴이 됩니다. 마치 '이제, 시작해볼까.' 라는 듯 침착한 목소리 톤으로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라고 말하던(이 때까진 리차드를 등진 상태) 이 네이슨은 전주가 시작되면 곧, 리차드 앞에서 불안한 척, 두려운 척 하는 네이슨으로 돌아와 그를 향해 돌아보며 "나 걱정돼."라고 '연기'합니다. 이게 대충 3월 둘째주에서 셋째주까지의 상윤 네이슨이었고요. 3월 넷째주 들어서면서부터 버전2가 등장하기 시작했죠. 버전2의 상윤 네이슨은 리차드에게 자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디폴트나 버전1만큼 급변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특히 이날 공연의 경우, 불안한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불안해하며 리차드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어요. 물론 20년 전에 죽은 니체가 '말하고 있다'며 얼척없는 현재진행형 ing구문을 구사하는 바보 리차드가 의지하고 싶을만큼 믿음직스러울리는 만무하지만(...아 나 이 번역 정말 싫어 ㅠ_ㅜ) 이미 방화라는 범죄를 저지른, 비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가 나와 함께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과 목소리였죠. 버전2의 네이슨은 이 넘버에서 앞으로 자신이 진행할 계획의 반석을 닦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나와 함께 있어줄 것인지',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는데, 너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인지' 리차드의 마음을 떠보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 눈알을 또록또록 굴려가며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잽싸게 타자치곤 씨익 웃는 버전2 상윤 네이슨은 버전1의 무섭고 섬뜩한 느낌보다는 결혼 일주일 앞두고 마초 남편한테 억지로 가사 분담 서약서를 작성하게 만드는 여우st. 새색시(...)같은 느낌이 더 강하죠.
네이슨이 손가락 쓩 빼서 피하는 장면은 '디테일하게, 명랑하게, 쾌활하게'가 모토인 이 페어의 개그포인트 중 하나임이 분명한데(이 넘버에서의 상윤 네이슨, 정말 귀엽지 않나요? :D) 이날 공연에서는 리차드가 스스로 손가락 베는 장면에서도 웃더군요? ;; 으응? 체했을 때 손 한번 안 따보셨나들, 거기선 왜 웃지;; 리차드가 초인론 들먹이며 니체 책을 보여줄 때 필석 네이슨의 경우 안경을 꺼내, 안경을 쓴 채로 책을 들여다보고 상윤 네이슨은 안경 꺼내는 동작 없이 그냥 책을 휘리릭 넘겨보죠. 전 여기서부터 이 두 네이슨의 분기점이 갈라진다고 보고 있어요. 가까이 있는 책을 볼 때도 꼭 안경을 챙기는 필석 네이슨과 사실 안경같은 거 안 써도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상윤 네이슨. 게다가 상윤 네이슨은 계약서 쓸 때 "잠깐만, 나 안경 좀 쓰고." 라는 대사를 굉장히 힘주어서, 일부러 리차드 들으라는 듯이 연기하곤 하거든요. (또 그걸 들은 우형 리차드는 '으이구, 저 찌질한 놈' 하는 표정으로 킥킥 웃고) 마치 '자, 잘 봐두세요. 이 부분이 바로 복선입니다.' 라고 관객에게 넌지시 던져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네이슨이 아무리 천재여도 계약서 쓸 시점에서부터 안경을 어떤 key로 사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해석하긴 힘들겠지만, 굳이 안경을 쓸 필요는 없는 상황에서 리차드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혹은 그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안경을 쓴다는 느낌은 종종 받습니다.
- Thrill Me. 오오오, 나왔다!! 울면서 부르는 쓰릴미!!! 버전2 상윤 네이슨!!! 이 날의 우형 리차드는 앙탈보다는 정색에 가깝게 네이슨의 손길을 거부했고, 여전히 네이슨 말은 귓등으로도 안 처들었으며, 그래서 상윤 네이슨은 절망적이고 자조적인 감정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찢으려던 계약서를 다시 접어 안 주머니에 넣는 그의 얼굴 위로 희미한 웃음이 스친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 뿐이었고, 그조차도 승리와 쟁취의 미소가 아니라 패배자의 자기위안에 가까운, 초라한 웃음 조각이었죠. 눈물을 가까스로 삼키며 리차드에게 다가가 그를 돌려세우고 "집중해, 나한테!"라고 하는데 '애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쫌 5분만 집중해봐라 이 초딩색햐!!' 하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_-) 이 버전일 때의 네이슨은 "어린애 취급 말아, 복종할 테니까." 란 가사가 그렇게 애잔할 수가 없어요. 이 네이슨에게 있어 thrill me 넘버는 드디어 가졌다- 는 포만감이나 자족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는 결국 너를 끝까지 가질 수 없겠구나- 는 한계 자각의 장면이라서 말이죠.
'다 벗어줄테니 님 맘대로 하셈 ㄱㄱ' 모드로 첫단추부터 끝단추까지 죄~다 풀어헤치는 바람직한 산호 리차드와는 달리 어차피 암전됐을 동안 빛의 속도로 다 잠글거면서 단추를 채 다 푸르지도 않고 손 놔버리는 비싸…다기보다 게으른 남자 우형 리차드…… 쳇. 벗어도 안 봐, 안 봐. 흥. 이상하게 이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에선 공통적으로 어떤… 섹스 어필에 대한 결벽증마저 느껴진단 말이죠. 보는 사람 염장을 지르는 상대 배우와의 캐달달 러브러브 로맨틱 무드는 얄미울 만큼 잘 만드는데, 손끝이 저릿저릿… 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섹시 근처라도 가는 무드는 여엉……. 인색하기 짝이 없는 신체 노출이나 스킨쉽 수위도 그렇지만, 표현력이 모자라거나 감정 몰입을 못 하는 것도 아니면서 유독 타인을 '유혹하는' 넘버만큼은 소화 못 해내는 게 참으로 미스테리입니다. 지킬의 댄저러스 게임, 쓰릴미의 로드스터 같은 곡 말이죠. 이번 시즌 쓰릴미에서도 우형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포기했어요. 그냥 이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아윌킬유-_-가 컨셉인 거야. 응, 그런 거지. ||orz
- 5분 후, 나의 방. 넘버도 아닌 이 씬을 따로 빼는 건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장면이라. (먼 산) 전 이 씬 초입에서 무릎베개 하고 누워있는 네이슨의 디테일한 연기가 참 좋아요. 뭐랄까 그 행복함&만족스러움 가득한 표정과 몸 뒤척이면서 나른하게 내뱉는 한숨같은 게 아, 이건 정말 애프터(...)로구나 하는 느낌이 든달까요. 지엽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이 극 전체의 리얼리티를 완성시키는 법이지요. 물론 한손으론 다리 쓰다듬고 한손으론 리촤 손 끌어당겨서 가슴에 끌어안은 채 끊임없이 만지작 만지작 하는 것도 아, 얜 진짜 리차드 없이 어떻게 1년이나 버텼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좋… 긴 한데 사실 이 부분은 좀 많이 오글거려요? 내가 아무리 상윤 네이슨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대도 "무장…강도↗?" 하면서 주먹으로 리촤 팔 투닥투닥 두번 치는 건 진짜 크리티컬 히트. 만약 여자애가 저랬어봐요. 아무리 자기 남친이랑 둘만 있을 때 하는 행동이라해도 조낸 재수없다며 미립자가 되어 부서지도록 까일걸? ㅋㅋㅋㅋㅋㅋㅋ 아, 음,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_-;;
저 "무장강도?" 라는 네이슨의 말에 "살인." 이라고 답하는 우형 리차드의 톤이 4월쯤 들어서부터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마치 예전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 계획하고 있었던 것을 이번 기회를 빌어 입 밖으로 꺼내어놓기만 한다는 느낌으로, "살인." 이라며 차분히 말했는데 요즘은 지금 막 이 자리에서 번뜩!! 하고 생각난 듯이 "……살인!" 이라고 흥분된 톤으로 말해요. 근데 이 대사의 목소리 톤과 뭔가에 홀린듯한 표정의 조화가 썩 좋아서, 저 대사 듣자마자 '아아, 큰일났다. 쟤 또 발동 걸렸다. ㄷㄷ' 싶은 위험한 느낌이 확 들더라고요. 저건 말릴 수 없어, 일단 시동 걸리면 멈출 수 없는 성질의 것이야- 하는 느낌 있잖아요.
그런 리차드의 캐릭터에 맞춰서 연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이건 상윤/산호 페어를 보면 알 수 있겠죠.) "살인." 이라고 말하는 리차드에 대한 반응 역시, 상윤 네이슨은 다른 네이슨들과 사뭇 다릅니다. 작년의 우형 네이슨이나 올해 필석 네이슨의 경우, 리차드가 살인을 다음 계획으로 말해도 그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고 농담처럼 치부해버렸기 때문에 곧바로 정색하고 일어나지 않죠. "니체를 너무 많이 읽었다. 탐정소설을 많이 읽었거나." 이 대사도 여전히 리차드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느긋하게 말했고요. (우형 네이슨의 경우 어익후~ 애드립 추가 ←) 하지만 상윤 네이슨은 리차드가 살인- 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이것이 결코 농담이 아님을, 리차드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온 이상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말대로 행동할 것임을 정확히 파악합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초조한 눈빛으로 리차드를 달래고 설득하죠.
- The Plan. 우형 리차드는 여기서부터 울었습니다. 동생 죽이잘 때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어린애를 죽이자는 결론에 도달하자 눈물이 주룩. 저만의 징크스랄까요, 더플랜에서 울면 그 날 공연이 좋더라고요. 나 원래는 차갑고 건조한 연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으음.
"동생보단 낫잖아." 작년의 동호 리차드도 그렇고, 산호 리차드도 그렇고, 심지어 우형 리차드도 이전까지는 모두 이 가사를 다소 장난스럽게, 어린애를 죽이자는 계획을 만류하는 네이슨을 조롱하듯이 말했죠. 최대한 문자로 표현하면 "동생보단 낫잖아~" 정도 될까나. 이 뉘앙스에선 원래 리차드의 최종목적은 어린애를 죽이는 것이었고, 동생을 죽이자고 먼저 운을 띄운 건 진짜 목표를 결정하기에 앞서 장난스레 던져본 떡밥이란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날 우형 리차드는 진짜, 진심으로 동생을 죽이고 싶은데 '동생이라서' 차마 죽이진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어요. 벙쪄 있는 네이슨을 바라보며 천천히 퇴장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생보단 낫잖아?" 라며 물어요. 자신의 계획에 대한 네이슨의 동의를 구한다거나 네이슨의 선의를 조롱하는 게 아니라, '나도 아쉽지만, 그래도 동생보단 나은 거 아니야?' 라고 진심에서 우러나와 묻듯이 말하는 그 얼굴이 참…… 순진무구해서 섬뜩하달까. 이 장면에서 섬찟한 느낌을 받아보긴 또 처음이었죠. 이 리차드라면 언젠가는 분명히 동생을 죽일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은 예행연습일 뿐이고.
- Way Too Far. 상윤 네이슨의 엄마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마치 수학여행 가기 전 가방 꾸리는 중2 처럼 "닌텐도오~ 고스톱~ 팩소주~ 다 됐어 ㅋㅋ" 하는 리차드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엔 두려움과 참담함, 망설임과 슬픔만이 가득하더군요. thrill me에서부터 느껴진 감정선이 일관되게 쭉 이어져서 좋았어요. 사실 이 장면에서 네이슨에게 좀 집중을 못한 게, 우형 리차드가 이날 공연에서 유독 염산 뿌려보이는 모션을 신나게 해서 말이죠. 마치 주교님한테 알콜 뿌리듯이 염산병을 흔들어 보였다면 대충 상상이 가시려나요? ㅋㅋㅋㅋ
- Roadster. 이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첫공 때가 너무 인상깊게 남아서 그 후로는 별 감흥을 못 받고 있어요. 전 모든 매체를 통틀어 이렇게 노골적으로 무서운 유괴범은 처음 봤거든요. '그런 사람 아니야~' 라고 하는데 피식 웃던 앞자리 아저씨, 순간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래요, 솔직히 이해는 갔어요. (...) 그런 사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빠, 거울 좀 보세요. 눈이 시뻘겋게 번들거리고 있어요? 얼굴에 "아아, 빨리 죽이고 싶다. 얼른 요 녀석 뒷덜미를 낚아채서 머리를 박살내고 싶어." 라고 쓰여있는데요? 그래서 로드스터 보는 내내 대체 이렇게 대놓고 살기를 내뿜는 남자를 따라가는 애는 얼마나 눈치가 없는 거야?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또 09' 쓰릴미 공연 초반엔 애 발자국 조명이 살짝 맛이 갔었죠. 다 꼬셔서 차고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객석 쪽으로 발자국 '하나'가 덜렁 떨어지질 않나; 한 번에 몇 발자국을 순간 이동하질 않나. 그래서 아… 저렇게 맹한 애라면 따라갈 수도 있겠다… 라고 묘하게 납득했어요-_-;; 뭐, 요즘은 약간 살기가 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미혹자로서의 '능숙함'보다는 열아홉살 꼬꼬마의 '미숙함'을 강조하는 연기.
이 페어는 정말 로드스터가 설득력이 없는 게, 리차드는 그렇다쳐도 차 문 열고 올라타면 상윤 네이슨이 운전하고 있잖아요? (작년엔 이런 식의 공범행위가 배제된, 오로지 리차드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연출이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애가 뒷자석에 올라타면 네이슨이 물끄러미 쳐다볼 거 아니에요? 애 보고 씨익 웃는 라이토 모드 네이슨이든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떨면서 애 눈치 보는 너드 모드 네이슨이든 애 입장에선 정말 두려워… 모든 것이 다아……. (반대로 차에 올라탔는데 필석 네이슨이 예의 그 온화하고 정화되는 미소를 지어보이면 어떤 애라도 마음을 푹 놓을지도 ←)
- Superior. 여전히 정신 없는 슈페리어. 이날 이 넘버에선 전혀 예상못했던 부분 때문에 집중을 못했습니다. 리차드가 트렌치 코트를 벗어서 집어던지는데, 베스트와 바지 사이로 셔, 셔츠가 삐져나왔어!!! 배우는 몰랐겠지요. 네에, 몰랐을 거예요. 그 꼼꼼하게 옷 매무새 다듬는 결벽한 성격에 지금 자기 뒷태가 어떤지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삐져나온 셔츠를 구겨 넣었겠죠. 전 계속 마음 속으로 '어서 재킷 입어, 어서!!!' 를 외쳤을 뿐입니다. 흑흑. 그치만 이 페어의 슈페리어는 산만해서 공연 내적으로는 정말이지 집중이 안 되는 걸. 전 상윤 네이슨이 찌질하다는 평에 별로 공감 안 하는 편인데(찌질하다기엔 너무 귀엽지 않나요? :-P) 이 넘버에서 "맘껏 휘저어 세상을!" 하며 리차드가 네이슨을 무대 앞으로 떠밀 때, 잔뜩 움츠러든 채로 비틀거리는 상윤 네이슨만큼은 찌질하다는 단어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네요. 아, 이날 우형 리차드의 대사톤 중에서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완전 시건방지고 자신만만하게 친 "물~론!" 요거 마음에 들더군요.
- Ransom Note. 여기서 상윤 네이슨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는 리차드가 타자 치고 있을 때 그 편지의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고 계단 위로 올라가, 침대 근처에서 초조한 듯 손을 비비며(닦는 게 아니라)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는 연기를 펼쳤는데 이 날 공연에서는 필석 네이슨과 유사한 해석으로 갔어요. 타자 치는 리차드 곁에 잠시 머물렀다 올라가긴 했지만 내용을 봤다기 보단 그저 물끄러미 리차드를 바라보았을 뿐이고 침대 근처로 올라가서는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살인의 흔적을 신경쓰는 모습이 역력했어요. 필석 네이슨이 강박적으로 손바닥을 문질러 닦아내는 모션을 취했다면 상윤 네이슨도 손을 문지르긴 했지만 그보단 소매끝단 같은 곳을 코 앞으로 가져가 (피)냄새를 맡는 모션이 인상적이더군요. 눈빛도 굉장히 불안했고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안경을 일부러 떨어트렸다'는 해석은 아직 유효했어요. 안경을 정말 당황해서 찾아보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리차드와 함께 편지 내용을 읽을 때 "아직은 안전하다. 하지만 장담 못해." 라는 가사에서 편지가 아닌, 리차드의 얼굴을 바라보며 편지의 내용을 똑같이 '리차드에게 알려주는' 연기가 여전했거든요. 이 페어의 협박 편지는 실제론 둘인거죠. 리차드가 아이 부모에게 보내는 내용이 하나, 그리고 네이슨이 리차드에게 보내는 내용이 하나.
결국 안경을 일부러 떨어트려놓고,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그에게 하나씩 단서를 흘리고 힌트를 주며 리차드의 반응을 관찰하는 상윤 네이슨의 캐릭터 자체는 변함이 없어요. 단, 디폴트나 버전1일 경우 '안경으로 얘를 덫에 빠트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라는 철저히 계획적인 계산이 돋보인다면 이 버전2에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정상윤씨가 말했던 것처럼 안경을 떨어트린 게 이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순수한 '터닝포인트'로서 기능하기를 바라고 취한 행동이었다는 점이 다르죠.
우형 리차드는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요. 나 이것 좀 불만. 진짜 아버지고 동생이고 뭐고 아무 생각 없이 협박편지 싱나싱나~ 했던 초반의 초딩 리차드 해석 완전 신선했는데. ㅠ_ㅜ 그래도 "야, 내가 유괴 당하면 우리 아버진 어떻게 할까?" 이 대사를 할 때까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애정결핍 컴플렉스 같은 감정 없이, '잠깐,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애를 찾기 위해 부모가 돈을 내겠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할텐데……. 과연 부모가 애를 찾기 위해 그만큼의 돈을 낼까? 우리 아버지라면 어떻게 할까? 날 위해서 돈을 낼까?' 이런 사고 과정을 통해 도출된 순수한 '의문문'이라서 마음에 듭니다. 보통 다른 리차드들은 이 대사에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를 드러냈죠. 그러다가 네이슨과 그의 아빠의 관계가 언급되고 난 후, 자연스레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와 비교하게 되고 네이슨에 비해 너무도 명백하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약간의 자조적인 뉘앙스로 손가락을 책상이나 타자기 모서리에 튕기면서(이건 약간 우울해질 때 보이는 버릇? 초조할 때 보이는 라이터 딸깍거리기나 입술 만지기랑은 확연히 다른 버릇인데) "우리 아버지는 단지 사회적인 시선에만 신경쓸 걸." 이라고 말하다가 또 완성된 편지 바라보며 네이슨과 함께 에헤헤헷 웃죠. 이 웃는 것도 예전엔 아버지 얘기를 하고는 있지만 편지에만 신경 팔려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못 참는다- 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웃기 전 대사톤이 좀 차분한 느낌이라 자신도 모르게 웃는다기보단 의식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혹은 네이슨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웃음으로 상황을 피한다는 느낌.
- My Glasses/Just Lay Low. 쓰릴미, 슈페리어, 내안경- 이렇게 세 넘버가 이날 공연 유독 템포가 빠르단 느낌이 들었어요. 08시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09시즌 공연에 비하면 긴박감이 있다랄까. 특히 내안경/기다려 넘버에서의 피아노 연주는 정말 좋았습니다. 올해 들었던 내안경/기다려 반주 중 최고였어요. 날카롭게 날이 올라 배우들의 호흡이 조금만 어긋나도 베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죠. 이 넘버 초반 리차드의 대사 중 실실 웃으면서 "어떻게 알아보냐? 애 얼굴이 완전히 녹았는데 ㅋㅋ" 이거 참 좋지요. 진짜 죄책감이라곤 1그램도 없어. 아이 좋아. 마지막 수화기 내려놓는 타이밍도 딱 맞았죠. 이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지면 어떤 효과가 생기냐면ㅡ 저렇게 의심하고 배신하고 갈등하며 반목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런 사소한 동작마저도 '어쩔 수 없이' 일치하는 나와 그의 Relationship 이 느껴지거든요.
- I'm Trying To Think. 리차드의 "최고를 가진 놈이 어떻게 되는지 알겠다!" 이 대사톤 좋았어요. 사실 이건 한국어로 번역한 대사 자체가 내용 안에 썩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하는 느낌이라 배우들도 이 대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서 소화해야할지 결정하기가 좀 힘들 듯. 원작에서 BEST 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던 단어를 한국어 느낌으론 제대로 살리기가 어려우니 말이죠. 그래서인지 이 부분은 매 공연마다 대사톤을 다르게 시도해보더라고요. 전 이날 공연에서의 대사톤이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상윤 네이슨은 마지막 취조당할 때 아주, 아주 약간 톤을 바꾸었더군요. 미친 듯이 움츠러들면서 "생각 중이죠오오오오↗" 라고 비명을 지르듯 노래하던 걸 모션도 약간은 절제하고(그치만 여전히 두려움에 떠는, 혹은 떠는 척하면서) "생각 중이죠오…" 라며 비교적 일상톤으로 노래했어요.
- Way Too Far rep. 개자식 리차드 소환. 첫 등장할 때부터 공원히 멍 때리고 앉아있는 네이슨을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씨발- 하고 욕을 하더군요. 야 인마 너 쫌!!! ㅠ_ㅜ 바닥에 형편없이 엎어져 있는 네이슨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허리 숙여 들여다보며 "안경을 떨어트린 건 내가 아니야아?" 하는데 진짜 저라도 너어어어어어!!!! 하고 싶을 만큼 얄밉더라고요. 계속 일관되게 슬픔과 자조, 패배의 정서로 얼룩진 네이슨이었어서, "어쩌다 이렇게… 뭐가 잘못된 걸까……." 라고 읊조리는 네이슨의 감정이 절절하게 와 닿았죠. 이 네이슨이 말한 "멀리 달아나버리고" 싶지만 결국 "못 하는" 대상은, 경찰이나 범죄 사실이 아니라 리차드, 오로지 '그'ㅡ
- Keep Your Deal With Me. 이 날 공연에서 유일하게 납득이 가지 않은 장면. 공연 동선 상, 배우들의 표정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왼쪽~중앙의 좌석에 주로 앉는지라 이 넘버에서 리차드가 네이슨을 껴안고 애원하며 키스할 때, 늘 리차드보다는 네이슨의 표정이 더 잘 보이곤 했습니다. 이 날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조금 후회했어요. "뭐든 할게, 자기야. 너 없인 나도 없어." 라고 말하는 네이슨의 심경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네이슨의 표정 변화에 주목할 게 아니라 그런 네이슨의 눈에 비치고 있는 리차드의 모습을 오히려 더, 주목해서 봐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피로하고 권태로운 표정으로 그를 외면하던 네이슨이 본 자신에게 매달려오던 리차드, 키스하기 직전에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 그것을 봐야 무엇이 이 네이슨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더라고요. 뒤이어지는 Life Plus 99 Years에서 보여준 연기로 인해 킵유어도 극 안에서 감정선이 어긋나는 이질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날의 킵유어는 아직까진 미완성에 가까운 상태로 느껴졌습니다.
왜 상윤 네이슨이 유독, 이 넘버를 흥미로워 하면서도 새로운 버전으로 선보이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고 하면 건방진 관객 1인으로 등극하게 되는 걸까요? 정상윤씨는 네이슨의 대사 자체엔 일절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그 대사를 연기하는 목소리 톤과 표정, 동작에 미묘한 변화를 주며 3월말부터 꾸준히 캐릭터를 업데이트 해왔죠. 맨처음엔 라이프+99를 건드렸고(내가 널 협박하니?/아니, 늘 함께 할거야), 그 다음 Thrill me를 건드렸으며(계약서 찢는 씬/집중해, 나한테), 생각중이죠(마지막 진술씬)를 거쳐 이제 마지막, 이 킵유어딜에 이르렀습니다. 크로스 직전의 공연이었던 19일 밤공의 킵유어딜을 돌이켜보면, 그건 버전2의 상윤 네이슨이 연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연기할 경우 일관성 있고 안정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는 있되, 공연 초반부에 보여졌던 그야말로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 네이슨은 일정 부분 포기해야만 하죠. 때문에 앞으로 킵유어를 어떤 식으로 새롭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상윤 네이슨이 지금까지 보여준 두 방향의 네이슨을 '동시에' 표현해낼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몇주만 더 기다려보자. 업뎃될 때까지~
(2)로 이어집니다







덧글
유리구슬 2009/04/22 21:10 # 답글
오오- 퇴근하자마자 정독했습니다! 마침 보내주신 선물을 쟁여두었다가 어제야 클리어-했거든요. 상윤씨도, 우형씨도, 연기변화를 표정으로 주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공연이 좋으셨다고 해도 제가 과연 알 수 있을까했는데, 소리만 들어도 대사를 치는 강약이나 톤이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처음 네이슨-리처드의 재회씬부터 꽤나 톤이 달라서 신선했었어요. 우형리처드와 상윤네이슨 둘다 뭔가, 드디어 대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느낌이 들더군요. 피아노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네요... 제가 본 공연들 중 절반은 항상 피아노가 클라이맥스에서 엉뚱한 건반을 두드려서 빠직-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실수도 적어지고 긴장감도 느껴지더라구요. 피아노님, 로딩 좀 일찍 하시지.. =_=전 안타깝게도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 네이슨은 보지 못해서 많이 아쉬워요~ 아마 제가 볼 즈음에 캐릭터를 바꾸는 중이었던것 같은데,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으로 더 일관성 있는 네이슨을 보지 못한 그런 느낌도 들구요. 계산적이었다가, 감정적이었다가, 끌려갔다가... 끝에 가선 정말 진실은 뭔거야? 네이슨, 넌 도대체 어떤 사람인거야? 싶은 그런... 근데 저도 꿀꽈배기님처럼, 상윤네이슨을 1g이라도 찌질하다가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많이들 찌질하다고 하시니 전 그냥 상윤네이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걸지도요? ㅋㅋ 어쨌든 점점 상윤네이슨은 계산적이라기 보다도 '그를 뒤따르고 그를 손에 넣기 위해 호기를 부려 본' 그런 네이슨이 되어가는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바뀌려나요... 행여나 담에 볼 수 있으면 산호리처드라도 상윤네이슨의 캐릭터를 완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램뿐이죠!
우형리차드의 로드스터는 정말... 소름끼치게 무섭긴한데... 따라가는 애는 바보냐, 같은... 전 작년에 살기에 번뜩이던 동촤드 따라가는 애는 정말 바보구나 싶었는데, 동촤드는 귀여운편이었던거예요. 그래도 소름끼치게 무서운 로드스터 정말 좋아요 으하하하~
꿀꽈배기 2009/04/24 09:55 #
네이슨도 그렇지만 우형 리차드의 대사톤이 굉장히 달라졌지요? 유리구슬님 말씀대로 입에 쫙쫙 달라붙어요. 요즘 무대 위에서 우형씨를 보고 있자면 마치 리차드처럼 들려, 리차드처럼 보여, 리차드처럼 화내, 리차드처럼 느껴, 저건 그냥 리차드야~ 이런 느낌이에요. <-정말 재미있는 게, 이혜지씨의 연주 속도가 정말 4월 10일 하늘리차드 첫공을 기점으로 확 바뀌었어요. 원래 이 페어의 총공연시간(프렐류드에서 바우까지)이 평균 98분 정도 되었는데 10일 이후 공연부터는 쭉 96분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셨군..... 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필우페어 첫공이 09' 쓰릴미 사상 최초로 공연 시간 100분대로 찍히면서 지난주 내내 유지해온 연주 템포를 잃으셨는지 다시 또 실수가 잦아지셨다고-_-;;;
네, 맞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유리구슬님께서 공연 보셨던 그 때가 딱, 상윤 네이슨이 캐릭터 바꾸려고 시도하던 바로 그 시기였어요. ;_; 저는 첫공부터 쭉 변화를 지켜봐왔던 터라 그 시기(3월 27일, 29일)의 변화된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지만 디폴트를 못 보시고 변화되려는(완전히 변화된 것도 아니고) 모습을 첫공으로 보신 유리구슬님을 생각하면 제가 다 안타까워요. 게다가 그 주간이 또 유난히 실수가 많았어서;; (그 이후론 칼이 안 나오거나, 염산 줄줄 새기, 미끄덩~ 같은 큰 실수는 한번도 안 나오고 있다능 orz) 이건 필히 막공 전에 다시 오셔서 보시라는 쓰릴미신의 뜻인 겁니다. 네, 그런 겁니다. 상윤 네이슨이든 우형 리차드든(필석 네이슨과 산호 리차드 역시) 캐릭터의 완성체가 크로스에서 나오긴 힘들 것 같지요? 상윤/우형 페어의 경우 크로스 공연을 통해 유연함을 얻어, 스스로와 파트너를 믿고 조금은 더 도전적으로 캐릭터 해석을 시도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상윤 네이슨이 찌질하진 않지 않나요??? 그런 말 하는 분들은 진짜 찌질한 사람을 못 겪어봐서 그래요. 엉엉. T^T
전 동촤드라면 제 이름정돈 말해줄 것 같아요. 그치만 우형 리차드한텐 제 닉네임도 말하기 싫어요. 지옥의 문턱 너머까지 쫓아올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로소 2009/04/24 19:19 # 답글
와, 진짜 압도적인 후기네요!! 저는 이 페어의 공연을 14, 19일 이렇게 두 번을 봐서 무섭다는 상윤 네이슨은 보지 못하고,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상윤 네이슨만 봐서, 처음에는 굉장히 의아했어요. 아니 상윤 네이슨이 그렇게 계획적이라는데 내 눈엔 그냥 이쁜 놈 하나만 보이는데... 그런데 꿀꽈배기님의 리뷰를 보니 연기 스타일이 계속 바뀌고 있는 거였군요 ㅋㅋㅋ그리고 저도 정네이슨이 찌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냥 정네이슨은 찌질한 게 아니라, 자기가 이 사랑에 있어서 약자의 입장에 위치한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현실적인 애 같아요. 그리고 자의식이 강하다기보다는 그냥 생각한 걸 밀고 나갈 줄 아는 애처럼 보이고요.
김우형 리차드에 관한 말씀도 구구절절 버릴 데가 없네요ㅠㅠ 전 진짜 김우형 리차드의 로드스터처럼 유혹적이지 못한 로드스터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ㅋㅋㅋ 진짜 1g의 매력도 느끼지 못하겠더라고요. 근데 그래서인지 우형 리차드는 어쩐지 미워할 수가 없어요, 로드스터에서 그렇게 성적으로 담백한; 모습을 보아서인지 어떤 일을 저질러도, 그래, 너는 애구나,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에요.
아, 맞다. 우형 리차드가 하는 '아버지에 대한 고민' 있잖아요, 이건 강필석 네이슨과 함께 공연하니까 더 증폭된 것 같아요. 21일과 22일 공연을 봤는데, 아버지 얘기 할 때 뜸도 더 들이고, 뭔가 말하는 어조도 애달프더라고요.
좋은 후기 잘 봤어요 꿀꽈배기님. 저도 오늘 그 무대; 가는데 엄청 기대됩니다!!!
꿀꽈배기 2009/04/25 14:40 #
와아, 로소님이다~ 다시 댓글 남겨주셔서 반가워요. :D14일, 19일 즈음에는 애교 많고 사랑스럽고 안쓰러움마저 느껴지는 상윤 네이슨의 중간 완성체같은 느낌이라서 그가 공연 초반부에 보여줬던 섬뜩한 모습은 거의 없었죠. 3월 말 이전에는 공연 보면서 진짜 말 그대로 "입을 딱 벌리고" 상윤 네이슨을 쳐다본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답니다. 리차드를 볼 때의 표정과 객석을 볼 때의 표정이 180도로 달라서 굉장히 소름끼치는 네이슨이었어요. 맞아요, 로소님 말씀처럼 상윤 네이슨은 찌질하다기엔 지나치게 똑똑해요. 이지적인 필석 네이슨과는 달리 계산적인 느낌으로, 필석 네이슨이 판단력 좋은 리더 타입이라면 상윤 네이슨은 눈치 빠르고 모략에 능한 책사 타입? 자신이 어떤 식으로 굽히고 행동하면 우형 리차드가 자신을 귀여워하는지, 자신을 통해 지배의 쾌감을 느끼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자존감 따위는 멀리 치워 버린 것 같지요. (무, 물론 천성적으로 M이라는 느낌도 지울 순 없지만-_-;;)
우형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참 ㅋㅋㅋㅋㅋ 그래도 올해 더 플랜의 번역이 작년 번역이랑 다르게 가서 그나마 이 살인의욕100%의 로드스터에 납득하고 있는 거지, 작년 번역에 이런 넘버 해석이었다면 아무리 우형 리차드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라 해도 용서어 못해애~ 작년엔 더 플랜에서 동생을 죽이자는 대목을 노래할 때 "강간을 당한 듯 현장을 꾸며서" 였어요. 올해는 "강도를 당한 듯 현장을 꾸며서"죠? 남동생이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듯 현장을 꾸미면 모두 속아 넘어갈 거야~ 라는 발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리차드라면, 이런 캐릭터의 로드스터에선 페도필리아적인 느낌도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년의 경우 담백섬뜩한 동호 리차드의 로드스터보다는 무열 리차드의 로드스터쪽이 좀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추측으로만 남겨두는 건 제가 직접 무열 리차드를 본 적은 없기에) 싶었고요.
사실, 꼭 번역 문제가 아니더라도 로드스터는 좀 유혹하는 느낌이 나야, 같은 멜로디 위에서 전혀 다른 대상(네이슨)을 유혹하며 전혀 다른 상황(범죄의 시작vs범죄의 수습)을 노래하는 킵유어와 이어지며 극적효과가 더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우형 리차드의 로드스터는 쫌 아쉬워요. (솔직히 제가 하늘 리차드를 혹평하긴 했지만 로드스터 넘버에 한해서만큼은 하늘 리차드가 가장 좋더군요)
상윤 네이슨과 공연할 때에도 우형 리차드는 조금씩 더 진지해지고 차가운 도시 남자(...)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뜨거운 도시 남자(...) 필석 네이슨을 만나게 되어 변화가 가속도가 붙게 된 듯도 싶습니다? 으하하하. 저야말로 로소님의 유쾌한 댓글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