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엔 9, 10화 본방사수를 못했습니다. 부랴부랴 다시보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이걸 다 캡처해서 스토리의 흐름을 쫓는 감상을 쓰려면 11, 12화 방영이 끝날 때까지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아서-_-;; (이번주 역시 좀 바쁜 관계로, 과연 본방사수할 수 있을런지도 미지수고요) 드라마가 딱 절반까지 다다른 시점에 맞춰, 그동안 주목해왔던 몇몇 부분들을 짚고 넘어가볼까 합니다. 대략 세파트로 나뉘지 않을까 싶네요.
계속 봅니다
신의 채경에 대한 감정 변화를 따라잡으려면 먼저 그가 황실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를 인식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연출진이 궁의 배경을 조명하는 색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실의 주조가 되는 색감은 붉은색입니다. 붉은색은 황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죠. 특히 황실의 웃어른들이 사용하는 대전 및 응접실은 자연광이 거의 배제된 채, 역시 붉은 톤의 인공적인 조명으로 출연자들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며, 소품의 배치 또한 대단히 조밀하게 짜여져 세트를 메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와 확연히 대비되는 것이 채경의 집입니다. 초록색으로 일관된 채경의 집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거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이죠. 단순히 창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언제든지 마당으로 '걸어나갈' 수 있어 내/외부의 경계조차 무너뜨리는 이 문을 통해 채경의 집은 늘 자연광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이것도 모자라, 채경의 집을 방문한 신은 직접 텃밭으로 나가 눈부신 빛과 신록에 둘러싸이게 됩니다.
이렇듯 상반되는 두 가정의 분위기를 절충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신과 채경이 머무르는 동궁전, 파빌리온입니다. 색감상으로도 붉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지고 있으며, 그 안의 값비싼 소품들은 계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기보단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채경의 집을 닮은 전면의 유리창으로는 햇빛이 쏟아지죠.
이것은 모두 궁에 신채경이라는 소녀가 들어온 후의 일입니다.

맨발차림으론 다닐 수 없어 언제나 의복 안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신의 발처럼 그 소년은 빛을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취미는 빛을 차단하고 즐기는 영화 감상이나 암실 속에서 작업하는 사진 촬영등이죠. 8화에서 어머니인 황후와 대화할 때조차 그는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황후에게 가로막힌 채 오로지 어둡고 음습한 궁 내부의 건물에 기대어 의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 안에 갇힌 곰인형 알프레드처럼 그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물 위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신에게 스미듯 다가온 것이 채경입니다. 빛이 드는 파빌리온에서 결국 신은 웃습니다.

맨발로 편히 쉬는 혼자만의 비밀장소에서조차 빛에 노출된 것은 그의 벗은 발 뿐이었죠. 그러나 이 공간에 채경이 침투하면서부터 신의 위치도 달라집니다. 신은 채경의 움직임을 따라 빛의 안으로 들어옵니다. 서서히, 조금씩, 마침내 완전히. 그리고 그만큼 신과 채경의 거리도 좁아졌죠.

반면 효린은 어떻습니까. 첫만남부터 신과 효린이 함께한 곳은 어둡고 막힌 공간이었습니다. 청혼을 했던 장소도 외부와 차단된 교실 안, 다시 만나는 학교 내의 공간들 역시 사방이 가로막힌 코너들인데다 그것을 연출하는 색감또한 무채색에 가깝죠.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비밀 연인인 관계로 떳떳하게 만날 수 없다는 설정탓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신과 효린이 기본적으로 동일한 세계, 같은 사고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필연적으로 어느 집단에 속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이 집단을 거부하는 방법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집단 안에서 변화를 꾀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죠. 채경이 전자라면 신과 효린은 후자입니다. 그들은 이미 한 번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로부터 도망쳤던 전력이 있죠. 바로 그것이 둘을 이어준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첫번째 가출 뒤에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짧은 일탈의 끝은 이전보다 더욱 갑갑한 현실일 뿐이죠. 그랬던 신과 효린이 다시 한 번 애정을 확인하는 장소가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이국의 휴양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도피로 일관하는 이상 두사람은 결코, 스스로의 발로 궁에 들어와 현실에 맞선 채경에게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어른이란, 셰익스피어의 다이얼로그를 외우거나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니까 말이죠.

이렇듯 어른과 아이의 경계점에 서 있는 신에게 채경은 신발(실내화)를, 효린은 MP3플레이어를 선물합니다. 신에게 있어 이어폰(MP3)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기능합니다. 신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아버지와의 대화도 차단하고 황태자로서 당연히 이행해야할 의무도 거부해버리죠. 그런 이어폰을 신의 귀에 직접 꽂아주는 효린에 비해, 채경이 건네준 것은 황실(용무늬)을 담고 학교(외부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신발입니다.



그러나 처갓집을 방문한 뒤 '한걸음'의 용기를 얻어 어머니께 내딛어보려 했던 신의 마음은 당사자의 거부로 더욱 굳게 닫혔습니다. 신은 다시금 자기 안에 틀어박힙니다. 그리고 원래 자신의 공간인 암실에 들어온 채경을 쫓아내버리죠. 홀로 남은 어두운 세계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은 효린의 사진입니다.
네, 신이 채경의 신발을 신고 나아가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의 사이를 빛으로 이어주는 파빌리온이 있는 한, 신의 외도는 일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효린은 같은 세계에서 웃어줄 수 있을지언정 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외부와의 소통을 이끌어줄 순 없는 사람이니 말이죠.

문제는 채경입니다. 신과 황제, 황후부터 시작해 내관들과 나인들을 비롯한 모든 황실 사람들을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채경은, 정작 자기 자신을 향한 빛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채경의 유일한 에너지원인 가족과는 저만치 떨어져 있고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도 어쩐지 예전같진 않죠. 그나마 미워도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고싶은 신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되자 채경의 얼굴에선 급격한 속도로 광채가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점점 시들어가는 채경을 보며 견딜 수 없는 수목애호가 율이 있습니다.
중간점검 中 으로 이어집니다
태그 :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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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레몬 2006/02/13 05:54 # 답글
폐병환자의 미를 가진 수목애호가인겁니까! 어흑 우리 백합이만 생각하면 안구에 해일이...-.ㅜ 다음 편 기다릴게요!^^
프라키아 2006/02/13 16:52 # 답글
마지막 수목애호가 부분에서 정신없이 웃었습니다.^ㅂ^!!!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 주셔서 감탄하는 중입니다. 저도 다음편 기다리고 있을께요. 꿀꽈배기님의 다른 글들도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답니다.>ㅂ<
꿀꽈배기 2006/02/15 01:42 # 답글
레몬// 저 사진에서의 김정훈씨는 아주 파리하고 청초하니 그야말로 한 떨기 백합이 따로 없지요. 12화 예고에서 율이 표정이 몰라보게 좋아졌더군요. 내일은 꼭 본방사수해야할텐데 ;_;프라키아// 하하, 수목애호가는 이영도님의 마시는새시리즈에서 따온 말입니다. 율이에게 그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도 없는 것 같아요 :) 즐겁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공감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건 언제나 기쁘지요 >_<
Lunacide 2006/02/15 15:31 # 삭제 답글
중과 하도 기대하고 있겠어용...홍홍홍
꿀꽈배기 2006/02/15 23:15 # 답글
루나양 여기까지 왔구려. 후후.... 어서 빨리 흑합이의 진면모가 드러나야할 터인데.
지나가다 2006/02/16 21:59 # 삭제 답글
어쩌다가 '지나가다'가 닉넴이 되어버렸네요. 계속해서 올려주시는 리뷰, 늘 감사합니다. 많이 바쁘신가보군요. 본방 기다리다 들러 한마디 남깁니다. ^^ 힘내세요!
꿀꽈배기 2006/02/17 02:56 # 답글
앞으로도 지나가시다 한 번씩 들러주세요 ^^ 저야말로 응원 감사합니다!
소리 2006/02/18 05:38 # 삭제 답글
스스로 궁을 선택한 채경이에 대한 부분에서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랬던 거죠. 그래서 채경이가 달랐던 거죠.
꿀꽈배기 2006/02/18 16:28 # 답글
불안정한 가정사로 인해 방황하는 다른 세 아이들에 비해, 제대로 사랑받고 자란 채경인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 또한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랑의 대상이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 됐든 말이죠 :)
라임131 2006/02/18 22:50 # 삭제 답글
추천보고 달려왔습니다. 저도 요즘 궁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있답니다. 장면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분석한 글 정말 감동입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감정이입이 되는 드라마는 처음이라 그저그런 10대 취향의 트랜디드라마 취급을 당할때마다 속상하다는... 자주 들리겠습니다~^^(이번주는 본방사수를 위해 미친듯이 차를 몰아서리... 안전운전합시다...-_-;;;;;)
꿀꽈배기 2006/02/19 23:54 # 답글
라임131// 안녕하세요 라임님. 앗, 어느분께서 이곳을 추천해주셨나요? 이것 참 부꾸러워서(...) 아무튼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궁의 실제 시청자층은 20~30대 여성들이 대부분임에도 언론의 시선은 오로지 채경의 통신용어라든가 만화적 연출에 대하여 편중되었을 뿐, 왜 20~30대 여성들이 이토록 궁이란 드라마에 집중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는 점은 참 아쉽습니다. 이번주도 즐겁게 본방 시청하시고 꼭! 안전운전하세요! :)
선희 2006/03/03 23:10 # 삭제 답글
님의 다락방씬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채경이 다락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신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본 적이 있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빛에 의해서도 연출력이 돋보일 수 있고 의미를 새겨넣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다시한번 돋보이는 연출력이라는 것이 이런거구나 싶네요. 그리고 님의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힘 역시 많이 부러워요. 더불어 아직 님의 글을 다 읽지 못했기에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어요. 좋은 리뷰 감사하고 자주 들르겠습니다.
꿀꽈배기 2006/03/04 16:16 # 답글
선희님 안녕하세요 ^^ 저도 복습하면서 '아, 이 부분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연출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보지만 실제 감독님의 의중이 어땠을지는 감독님 본인밖엔 모르겠지요. ^^;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지만(그것도 영 딴판으로 해석한;) 여러가지 갈래로 뻗어나가는 감상은 시청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하며 달려본답니다. 저야말로 선희님의 감상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뵈어요 ^^